色, 樂, 狂...

첫눈의 맛~

2003. 12. 8. 08:05
무척 많이 쌓였다.

아직도 온다...

밤새 내린 첫눈...

아파트 앞은 조용한데...

큰길로 나오니 차들로 완전 혼잡스럽다.



올 겨울의 첫눈이다.

우산을 쓰며 나오다가 눈에 무슨 향기가 있을까 냄새를 맡아보았다.

비가 올때는, 마른 대지의 흙냄새도 나고 빗방울의 비린내도 난다.

그러나 눈이 올때에는..

아무런 냄새가 없다.

오히려 그게 더 특징이다.

그래서 눈이란 걸 알수있는 걸까.

대신 눈은 비와는 틀리게 맛이란게 있다.

시골에서, 군대에서 맛본 눈...

오늘 아침에는 감히 찍어서 먹어보질 못했으나...

다들 눈 맛을 알것이다.

과연 어떠한 맛일까...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혓바닥을 아리는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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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가는 길....

2003. 12. 5. 16:45
미친...


세상에나...


오늘 새벽 꿈에서 깨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젠장...

어찌 된게 결혼하러 가는 꿈을 꾸냐...

여자 얼굴도 모르는데... 갑자기 시골에서 아버지와 함께 서울(인천인가?)로 올라왔으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해도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빨리 결혼준비해서 식장에 올라가야 하는데...

그런데 아무도 내가 결혼하는 걸 모르고 나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고...

그런데 나는 결혼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

신부될 사람도 모르고...

이름이 뭐였드라...

첨엔 내 옆자리 여직원 이름이랑 같아서 설마 그럴리가 했다. (유부녀거든...)

그런데 이름 자세히 들어보니 박씨란다...(여직원은 김씨..) 그래서 안도했지...

두시간만에 쐐앵 달려서 식장에 도착하니

기억은 안나지만 신부측 몇 사람과 신랑측 몇사람만이 조촐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객은 전혀 없고...

혹시나 해서 전화기를 두드려 해고르에게 전화를 했건만... 이노무 시키는 받질 않고...

도대체 내가 누구랑 결혼하는 지도 모른 상태에서...

막 식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잠이 깼다.

젠장...

그곳이 웨딩홀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교실이었는지... 아님 그냥 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그렇다고 내가 깨끗하게 양복이나 옷을 차려 입은 것도 아니다.

급하게 구겨진 옷을 입었던 기억도 살포시 나는데...


제기랄...


왜 욕을 하냐고???



나이 서른이 되어서 결혼하는 꿈을 꿔본 적이 없다는 것이 하나!

결혼하는 꿈을 꾸었으면 신부 얼굴 정도는 봐야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 하나!

분명 내가 아는 사람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는데...(얼굴을 모르고 느낌으로만....)

그리고 굉장히 꿈속에서도 두근세근 했던거 같은데...




으음...

꿈에서 깬 뒤 속편을 꾸기 위해 다시 꿈속으로 들어갔건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식 진행하기 직전에 이런 저런 일들이 생겨서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동안 그걸 처리하느라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딱 식이 시작하는 시간이 다 되자 또 잠이 깬 것....

시계를 보니 7시 22분...

더 잘 수 는 없었다....

회사 가야 하니까...

에효... 꿈풀이를 해볼까??? 무슨 꿈일까???



해몽 부탁해요~

06:30
어젯밤은 잠을 설쳤다.
잠자리도 문제였거니와 피곤함에 맥주 두 캔을 마시고 9시 넘어서 눈을 감았는데
놀러온 이들은 밤 12시부터가 노는 시간이다.
그들은 12시에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고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신다.
시끄러움에, 그리고 텐트 옆을 지나치는 발자욱 소리에 문득문득 잠을 깨곤 했다.
그렇게 뒤척이다 눈을 뜨고 일어나니 6시가 넘었다.
해는 동쪽 산마루 위에 벌써 올라왔다.
잠결에 해변으로 나가 해뜨는 해변을 찍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태양을 향해 한컷 찰칵.
태양이 날 잡아먹을 듯 하다.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을 보니 오늘도 날씨로 고생할 길이 훤해보인다.
어제 제대로 보지 못했던 협재 해수욕장 주변을 산책했다.
아침부터 파란 바다가 눈에 들어왔으나....

8시에 출발하기로 계획을 잡았기 때문에 야영지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 후 씻고 짐을 챙기다 보니 야영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난다.
어젯밤, 많은 자전거들이 보이는데 그 주인들은 아직 꿈나라인것 같다.
내 뒤쪽의 한 텐트에 젊은이가 텐트에서 굴러나와 맨땅위에 몸을 비빈다.
짐을 챙기고 떠날때 쯔음 그 젊은이가 일어나더니 자기 모습을 보고 황당해한다.
물과 음료수를 사고 출발하기 직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아가씨들에게 사진한방 부탁하고 2일차 여행을 출발한다.
젠장...
아가씨들이 사진을 위에서 아래쪽으로 찍었다.
안그래도 짧은 다리가 더욱 짧아보인다.... ㅜㅜ
8시 20분이다.

09:10
신게물 용천수에 왔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다.
마실 수 있는 물이 아니라서 아무도 없을지도...

오는 길에 풍력발전하는 곳을 봤다.
큰 풍차 몇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선진국에서는 풍력/수력 등 화석이나 원자력 에너지가 아닌 대체에너지를 찾는다는 뉴스를 들었다.
한편으로는 외도에 폐기물을 처리하려는 뉴스도 떠오른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 차이가 생각이 난다.

조금 더 가다보니 수백미터가량 선인장을 재배하는 곳이 나타났다.
나무도 없이 해변 들판의 선인장들은 아주 색다른 모습이다.
영화나 TV에서 보던 사막의 선인장들과는 다르다.
조그맣고 옹기종기 모여있고 널따란 밭을 이루고 있다.

선인장의 가시는 다른 나무의 이파리다.
선인장의 가시가 나는 손바닥만한 이파리는 줄기다.
이곳의 선인장은 '백년초'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바닥선인장이라 부르는 식물의 과실을 말한다.
그러나 손바닥선인장이던 그 과실이던 모두를 일컬어 백년초라 한다.
감기와 더위에 좋다고 하는 백년초는 외상에도 좋고, 류마티스에도 좋고 술담그어 먹어도 좋단다.

진한 초록색의 손바닥들 사이사이에 피어있는 붉은 자줏빛 과실은 과연 선인장이 저런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져다준다.
도시의 선인장이라 하면, 주먹만한 작은 화분에 탁구공, 혹은 야구공만한 동그란 선인장이 컴퓨터 옆에 놓여있는 것을 많이 본다.
전자파를 막아주니 어쩌니 하면서 그렇게 현대식 도구에 잘 어울리는 선인장.
그것과는 틀리지만 150여년 전 제주 해안으로 떠내려와 자생하기 시작한 백년초는 한국의 선인장이다.
우리 나라의 산과 들에 나는 모든 식물은 대부분 민간치료법에 많이 사용된다.
전혀 보지 못했던 선인장이란 식물도 옛날 조상들의 지혜로 민중들이 쉬이 사용할 수 있는 약재가 되었다.
지금은 음식으로도, 한방약재로도, 정력제(?)로도 쓰인단다.
수백미터의 선인장밭을 지나 선선한 오전에 용천수에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제주도의 용천수는 몇번 본 바 항상 남탕과 여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여탕에는 들어갈 용기가 없어서 남탕으로 들어갔다.


이곳 신게물 용천수는 그리 깊지도 않고 물도 콸콸 샘솟지 않는다.
그래도 항상 고여있고 아주 차갑다.
오늘 하루 가는 길에 이런 곳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수영복을 꺼내 자전거 뒤에 마를 수 있도록 묶고 출발했다.
아까 지나면서 잠깐 봤던 그런 파아란 해변이 나오면 바로 뛰어들어갈 수 있도록...

09:50
이국적인 등대를 보았다.

'등대'라고 해봤자~ 이겠지만
주변 바위와 갈대, 잡초, 해안 풍경과 어울려 하얀 모습이 아주 멋졌다.
게다가 대부분 등대는 부두 위에 있지 않은가.
이 등대는 부두에 있는 등대가 아니라 더 보기 좋은 것 같다.
바다내음과 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등대 주위를 휘감는다.
이대로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하늘로 날리고 싶다.
조용한 가운데 파도소리와 바람에 노래를 부르는 갈대소리가 발을 붙잡는다.


10:20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인 수월봉에 도착했다.
수월봉에 올라가는 길은 그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경사지다.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려 했으나 1/3 지점 남겨두고 내려오는 차를 피하다가 자전거와 함께 옆 풀숲으로 쓰러졌다.
더이상 타고 올라갈 힘이 없어 끌고 올라간다.
수월봉에 올라오니 바람은 아주 시원하고 아까부터 도로에서 부분부분 보이던 차귀도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까 그 등대에서 멀리 보이던 섬이 차귀도이다.
처음에는 그 섬을 보고 참 희한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양쪽으로 절벽이고 가운데는 움푹 파인 평지다.

그리고 차귀도 옆에는 바위 하나가 바다위에 홀로 우뚝 서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차귀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무인도라 한다.
그리고 차귀도, 돌아가는 길을 차단한다는 전설을 가진 섬이라 한다.

해안도로가 끝나면서 어느 오름 같은 곳을 돌아가니 다시 해안도로 표지판이 나오고
차귀도로 들어가는 낚시배들이 즐비한 포구가 나온다.
포구에는 저곳에서 이어도, 공포의 외인구단 영화를 찍었던 곳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처음에는 차귀도의 북쪽에서 보고, 포구는 차귀도의 동쪽이다.
수월봉은 차귀도의 동남쪽, 정확히는 남쪽에 더욱 가깝다.
자전거세상 사장님이 말씀하길 수월봉에서는 날씨 좋은날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라산 쪽은 약간 뿌연 날씨 때문에 뿌옇게 보이고
대신 바다쪽은 깨끗하게 보인다.
위에서 바라보는 차귀도의 모습은 또한 색다르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캐러 왔다가 동생 수월이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자
오빠인 노꼬가 17일 동안 슬피 울었는데 그 눈물은 절벽 곳곳에 솟아나 샘물이 된다는 전설...
수월봉 아래 해안절벽과 용천수를 구경하지 못하고 온 것이 못내 아쉽다.

그렇게 바다와 섬과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서 미군 전투식량을 꺼내 파이를 먹고 조금 쉬었다.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히고 덥혀진 몸을 식혔다.
11시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햇살이 따가워진다.
다음 목적지인 송악산까지는 두시간이 넘게 걸리지 싶다.
11시쯤에 수월봉에서 출발했다.
12:30
갑자기 체력이 급속히 소모되었다.
수월봉에 올라가기 위해 너무 힘을 썼는지, 아니면 오전의 더위를 너무 많이 받았는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피부는 벌겋게 익고 따가움이랑 피곤함이 번갈아 언습해온다.
1시간 반동안 해안도로를 따라 오긴 왔는데 어딜 어떻게 지나왔는지 기억조차 없다.
간간히 조그만 어촌이 나오고 어촌 주변에 얕은 초록색 해변이 보였다.
동네 아이들이 낚시를 하고 물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같이 뛰어들고 싶었으나
나의 발은 계속 페달을 밟았다.
다소 큰 마을에 도착하여 무작정 지나가다가 해수욕장 간판이 보였다.
그쪽으로 핸들을 꺾어 도착한 곳이 '하모해수욕장'이다.
억지로 억지로 도착한 해수욕장에서 잠시 바다에 몸을 담궜다.
겉에서 보기에는 초록빛이 감도는 물이었으나 실제로 들어가보니 깨끗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친 몸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가슴까지 물이 차는 곳까지 들어갔더니, 배 윗쪽은 물이 따뜻한데 배 아래쪽은 차갑다.
그 묘한 느낌에 잠시 기대다가 바다에서 나와 샤워를 했다.
해변에다 텐트를 치는 것을 돈을 받길래 약간 떨어진 곳에다 텐트를 치고 밥을 먹을 준비를 했다.
미군 전투식량을 꺼내어 파스타를 뜯었다.
미군 입맛에 맞을지언정 도저히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두어숟갈 푸고선 봉지째 버렸다.
1시와 2시 사이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텐트 안에서 누웠다.
맨발로 가기도 힘든 달궈진 모래밭을 통해 부는 뜨거운 바람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간간히 섞여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잠시 누워있으니 모든 바람이 다 시원하다.
텐트를 달구는 강한 햇살마저 따뜻하게 여겨진다.
그렇게 누워 바다를 보면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2시 반이 넘었다.
모래 위에 텐트를 치고 누웠으니 모래찜질 효과도 있었을까?
하여튼, 일어나 날씨를 보니 여기저기 구름이 끼고 있다.
이정도면 이제 출발해도 되지 싶다.
15:40
송악산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얼마 머지 않았다.
그러나 송악산 가기 전에 왼쪽으로 이상한 산이 하나 보인다.
점점 흐려지는 날씨에 낮게 드리운 구름을 꼭대기에 걸친 거대한 바위같다.
갑자기 삼국지가 생각나고 서유기가 생각난다. 왜일까...
몇십분동안 그 산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송악산 들어가는 입구는 마라도행 배를 타는 항구에 있다.
항구에서는 송악산 들어가는 길은 보이나 송악산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강원도 산골짜기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처럼 보일 뿐이다.
길을 타기 시작하면 왼쪽으로 해안절벽을 따라 시멘트 포장길을 올라가게 되는데
완전히 오르기 전에 오른쪽을 보면 무슨 관광단지같은 것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제주도야 항상 관광단지가 아니던가...
넓직한 아스팔트 도로가 저 멀리 나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쓰린건 나뿐일까나...
좁은 도로를 차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그 사이를 자전거를 끌다 타다 하면서 올라갔다.
내리막길이 나오고 바람을 맞으며 조금 내려간 후 주차장이 나왔다.
주차장 입구에 자전거를 묶어놓고 사람들이 걸어가는 곳으로 같이 걸어갔다.
그리고 눈에 드러나는 것은 왼쪽의 넓은 바다와 눈앞에 보이는 가파도였다.
힘들었던 생각이 싹 없어질 정도로 송악산의 풍경은 아주 멋졌다.
바다와, 섬과, 절벽과, 수풀이 어우러진 환상이라고 할까...
기암절벽 위에서 보니 많이 흐린 날씨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마라도도 보였다.


징을 갖다 저길 깎고 얼마나 어루만졌을꼬
애증스런 손놀림이 이보다 전율스럴까
심심타 던진 돌 사이좋은 형제롤세




또한 두개의 바위가 바다위에 솟아있는 형제섬과
아까 오면서 보인 이상한 산도 보였다.
그 산이 산방산이라고 한다.
날씨가 좋았으면 훨씬 더 멋진 광경이었을 것이다.
절벽을 기준으로 안쪽으로는 길다란 잔디들이 바람에 따라 물결치고 있었다.
암회색 절벽과 푸른 잔디들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황홀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절벽 아래에는 일제시대 일본군이 뚫어놓은 15개의 동굴이 있다고 한다.

송악산은 99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직접 세어보진 못했으나 맞겠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이중분화구라는 것이다.
제주에서도 유일하다는 이중분화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기 위해 해안을 등지고 보았다.
길다란 산 능선이 하나 보인다.

저 안에 또 분화구가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분화구가 커다랗게 생기고 난 후 그 안에 또다시 분화구가 생겼다는 말이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던 언덕길로 올라갔다.
중간쯤에 분화구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말농장 간판이 자그맣게 있다. 그 길 건너편에는 말 한마리가 풀위에 조용하게 서있다.
자동차를 타고 왔다갔다 하다보면 이쪽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농장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순간 잠시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무슨 분지처럼 비잉 둘러싸인 분화구가 나타났고 그 내리막길로 긴 잔디들이 바람에 요동치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또다른 바위산같은게 보인다.
저것이 분화구 안의 분화구라는 것인가...
무슨 안간힘을 써서 태어난 곳에 또다시 태어났단 말인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분화구도 수풀에 뒤덮혀있다.

더 깊이 들어가보려 했으나 말농장때문에 그대로 사진을 찍고 뒤돌아섰다.
이것이 송악산이다....
용암이 흘러내리다 굳은 흔적을 마지막으로 보고 힘들게 올라온 언덕을 내려갔다.
이곳에 관광단지 및 유원지를 만든다는 커다란 간판을 보고 씁쓸해졌다.

송악산에서 보인 산방산과 그 앞의 용머리해안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16:30
송악산에서 산방산까지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보니 운동장에서 군인인지 전경인지 축구를 하고 있다.
그제서야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토요일 오후는 군인들의 전투축구시간 아니던가...
잠시 구경하다가 다시 페달을 밟았다.
산방산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는 용머리해안도 보인다.
용머리 해안 뒷쪽으로 멀리 절벽도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몸이 엄청 지치기 시작한다.
하늘은 구름에 가려 그나마 햇빛을 받지 않지만 더운 날씨에 흐르는 땀은 계속 눈과 입으로 스며든다.








산방산 입구로 올라가는 도로에서 샛길로 벗어나 용머리 해안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커다란 배 한척을 꾸미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곳이 하멜이 표류하다 들어온 해안이다.
관광지를 새로 꾸미는 듯 여기저기 공사중이다.
용머리언덕을 좌측으로 끼고 산방산을 등지고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배가 제대로 제 위치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곳에서 꼬불꼬불 언덕길을 따라 산방산 입구까지 자전거를 타다 끌다 올라갔다.
옆에서는 관광객들이 말을 타고 있다.
산방산 옆 도로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힘이 다 빠진다.
저 멀리 항구같은게 보이는데... 저곳이 화순해수욕장일 것이다.

도로를 내려가기 전에 산방산을 쳐다보았다.
구름이 걸려있는 그 모습은 흡사 중국의 고대 전설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러한 산방굴사를 들어가진 못하고 내리막길을 그대로 내려가기로 했다.




자전거 바퀴가 도로를 제대로 달리지 못한다.
아니, 내 다리가 페달을 제대로 밟지 못한다.
벌써 체력이 다한 것인가..
낮에는 잠시 쉬기도 해놓구선 이렇게 지치는게 싫다.
악으로 깡으로다...
어떻게든지 화순해수욕장으로 가서 빨리 텐트를 치고 쉬고싶다.
얼마 남지 않았다.
17:00
화순해수욕장 푯말을 보고 핸들을 틀었다.
골목골목 내리막길을 1~2분동안 내려왔더니 드디어 해수욕장이다.
지나가다 보니 할머니 두분이서 '학생~ 민박?' 하신다.
그러나 민박이 목적이 아니라 야영지가 목적이다.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상태에서 빨리 몸을 뉘이고 싶은데...
허걱... 야영지가 보이지 않는다.
10분동안 헤매다가 누구에게 물어보려고 했으나 다들 내 몰골을 보고 피하는거 같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자전거를 타고 욱씬거리는 엉덩이를 다시 안장에 비비며 해수욕장을 빠져나갔다.
해수욕장을 빠져나와 10여분 갔을 때,
힘이 없어서 무언가라도 먹으려고 음식점을 찾아봤지만 근처에 가게가 없다.
냉면집이 보이길래 찾아갔으나 폐업이다.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온 탓에 다시 올라갈 길이 까마득하다.
산방산 근처에는 아직 구름이 끼었으나 해변쪽에서 다시 비치는 햇살에 몸이 불타오른다.
이대로 가다가는 낙오할 것 같다.
물도 다 떨어졌다.
먹을 것도 없다.
다시 나타난 오르막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 쉬고 올라가다 쉬고...
어디에선가 눕고 싶으나 저 태양은 나를 쉬게 두지 않는다.
어느새 바람도 그치고
간간히 지나가는 트럭이 일으키는 바람만이 먼지와 바람을 가져다 준다.
언덕까지 왔다...
이제는 자전거길도 없다.
차들을 조심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다리에 말을 건다...
조금씩... 조금씩... 밟자... 밟자....
17:40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약간의 내리막과 약간의 오르막이 번갈아있고...
이 근처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저쪽에 '우리가든'이란 가게 간판이 보인다.
길을 건너 가게로 들어갔다.
일단 타는 갈증과 허기를 채우려 냉면을 주문했다.
조끼에 넣은 지도를 꺼냈다.
땀에 절어 너덜너덜 찢어져있다.
이곳은 안덕계곡 근처이다.
계곡에 발담그고도 싶지만, 무엇보다 기운을 내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 목적지는 화순해수욕장이었다. 야영지가 중문에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문에도 야영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화순에서는 야영지를 찾지 못하여 중문으로 변경한 것이다.
모든 옷이 다 땀에 절었다.
가볍게 선풍기를 틀고 바람을 맞으며 냉면을 먹었다.
버섯반찬이 나왔는데 다 먹으니 더 가져다 준다.
이 음식점에는 주인아저씨와 중학생 되어보이는 딸이 둘이서 있다.
주인아저씨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남들이 먹고 간 상을 딸이 치운다.
우리 집이 중국집 하던때가 생각난다.
배를 채우니 이제서야 기운이 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 괜한 말이 아님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그러고보니,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자전거를 탈 때에는 물과 음료수밖에 마시지 않았다.
오늘도 점심 미군전투식량 먹으려다 포기했으니 아침 식사 후 오전에 먹은 파이가 다다.
주인아저씨가 중문가느냐고 물으시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한시간만 더 가면 된단다.
순간 '한시간 씩이나 더?' 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어딘가.
식후 좋은 기분으로 담배한대 태우고 물 한통 사서 베낭에 끼우고 출발한다.
출발시간은 18시다.

18:50
중간에 자전거여행 팀을 만났다.
길 건너편에서 같은 방향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니 그 팀도 중문까지 간단다. 세명이다.
중문에서 보자고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부터 서귀포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무작정 페달을 밟는다.
그 삼거리부터는 거의 내리막길이다.
그리고 양쪽의 도로 가로수는 어느새 야자수로 변해있었다.
내일 이 내리막길을 다시 올라오려니 눈앞이 아른해지며 한숨부터 나온다.
결국 18:40분경 중문 관광단지에 도착했다.
입구서부터 쭈욱 내리막길이다.
다리를 조금 쉬게 하면서 팔과 손에 힘을 주고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중문해수욕장가는 표지판이 보이지 않아서 일단 내려가면 만나겠지 하고 내려갔건만
도착한 곳은 하얏트 호텔이다.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바다다.
호텔 뒤로 길이 보이는 것 같길래 올라오는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중문해수욕장이 어디냐고.
바로 아래란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해수욕장이란다.
야영장은 이쪽으로 내려가 800미터 정도 모래사장을 지나면 있단다.
어제 이호해수욕장에서 모래사장 위로 자전거를 끌고 갔던 기억이 있기에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다.
일단, 직접 내려가서 상황을 봤다.
계단을 주욱 내려가 모래사장과 만나면 저 한참 끝에 제대로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휴우... 너무 멀길래 결국 다시 거꾸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또 힘이 빠져버리다니...
질질 끌고 올라가다 테디베어 박물관의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리고 다시 시원한 내리막길...

19:10
드디어 중문 해수욕장 야영지 도착.
야영지를 확인한 후, 베낭을 풀고 텐트칠 자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막 텐트를 치려고 하는데 바로 옆에 두 젊은 친구가 자전거를 세우고 야영장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자전거여행자들과 제대로 만나는구나.
집이 청주인 ROTC 4학년과 서울이 집인 두 친구는 11시부터 내가 출발한 협재해수욕장을 출발하여
쉬지도 않고 달려 여기에 도착했단다.
아무래도 이들과 오늘밤 몇시까지 같이 있을지 모르겠다.

20:00
텐트를 다 치고 짐을 정리하고 그 친구들과 해수욕장 샤워실에서 땀에 찌든 몸을 씼었다.
그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선크림도 모자도 없이 왔기 때문에 벌겋게 달궈진 얼굴과 팔이 무척 쓰라렸다.
화상입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올라와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이런...
중문 해수욕장의 야영장은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좋지 않다.
야영지도 땅이 고르지 않고 바로 도로변에 있다.
어떻게 된게 밤에 야영지에 바람한점 불지 않는가.... 제주도 바람 많다면서...
날이 그렇다 치고...
야영지 주변에 편의점 하나 없다.
사려면 저 위쪽 호텔단지로 가던지 아니면 저 아래 해수욕장 앞 가게로 가야 한다.
주변도로에서 중문해수욕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해발(고도)의 차이는 대략 100m가 넘는다.
100m가 무엇인가, 한 500m 정도?
야영지에서도 해수욕장까지는 가깝지만 절벽 옆으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다행히 화장실과 수도는 가까웠다.
두 친구들이 오늘 쌀밥을 못먹었다길래 내가 가져온 전투식량을 다 꺼냈다.
그걸로 같이 친구들과 밥을 먹고 돈을 서로 모아 맥주와 회를 사다가 먹었다.
찬구라는 ROTC 친구는 4학년이다.
3학년때까지는 정신차리고 지내다가 4학년이 되면서 스스로 나태해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이번에 자전거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13시간동안 배를 타고 제주에 와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왔다.
다른 친구는 정호라고, 군대 면제된 친구다.
같은 청주에 있는 학교에 다니지만 집은 서울이다.
방학때라서 찬구와 같이 이번 여행길에 올랐다.
찬구보다 말이 없는 듯 했다.
게다가 정호의 고모부부가 야영지 윗쪽 콘도에 놀러와서 한밤중에 거기 인사드리러 갔다가 맥주를 더 얻어왔다.
두 친구들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얘기를 듣고 놀랬다.
내 베낭을 보고도 놀랬으며, 시뻘겋게 익은 내 피부도 보고 놀랬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여기저기 이야기를 해주니 자신들은 오늘 그냥 무작정 오느라고 제대로 구경 못한게 아쉽다고 했다.
두 친구들의 일정은 나처럼 3일이 아닌 일주일이다.
일주일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닐 예정이다.
게다가 내일 다른 친구가 합류하여 여행한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이고,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두 친구 모두 나와는 8살 차이나는 젊은이들이다.
그래... 나는 20대를 그렇게 보내지 못했다.
이제서야... 서른이 되어서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
그들과 나는 나이는 틀려도 서로 같다.
술자리를 파하고 12시가 넘어서야 각자의 텐트에 들어갔다.
오늘 있던 일을 정리하고 카메라 배터리를 확인했다.
내일 하루만 쓰면 끝일 것 같다. 아슬아슬하다.
아껴써야겠다.
게다가 오늘 저녁때는 사진도 찍지 못했다.
알고보니 하얏트 호텔 뒷쪽에 영화 쉬리에서 나왔던 언덕이 있단다.
그거 못보고 온게 아쉽지만 나름대로 혼자 청승맞게 그거 보러 갈 필요가 있냐고 자위하면서 눈을 감았다.
2003년 8월 2일 토요일.... 제주도에서.....


11:00
티켓팅을 끝내고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 한잔을 마신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서울하늘의 풍경은 일단 흐림이다.
다행히도 일기예보에서는 저 아래쪽 제주는 맑다고 한다.

테라스 옆으로 비행기 이착륙 소리가 들렸다 사라졌다 한다.

날씨는, 다시한번 말하지만 흐리다.
흐리다기 보다는 뿌연 안개가 가득하다.
알록달록한 흐림이 아니라 하늘은 온통 회색이다.
구름한점 없는 하늘도 머리 위 색깔은 새파란 반면 저 멀리 지평선의 색깔은 약간 뿌연 하늘색인데..
지금 김포공항... 서울의 날씨는 온통 회색이다.
이곳 테라스에서 바라본 주변 건물 색깔도 회색이다.
그저, 여행객들의 알록달록한 무늬들만 천연색 칼라다.
「 눈 앞에 만져지는 다양한 생명들
각각의 고유의 색으로 자랑하지만
점점 사라져
내 눈에 점으로 비치면
그것은 주변과 똑같은 회색
하늘이 정해준 오늘의 색깔 」
잠시 후 난 다시 화려한 칼라 속으로 들어간다.
12:00
비행기 타는 것은 태어나서 두번째다.
일년 전, 울산에서 올라왔을 때.
엄청난 바람과 기상악화 속에서 비행기가 뜰까 말까 하다가 겨우 떴는데
그렇게 많이 흔들릴 줄 몰랐다.
다행히 같이 서울올라가는 친구가 계속 말을 걸어주어서 1시간이 금방 지나갈 수 있었다.
어떻게 오늘보다 더 시커먼 회색 하늘 속을 날아왔는지 몰랐다.
오늘은 그때랑 정 반대다.
난기류도 별로 만나지 않았고
날씨는 서울 하늘을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더할나위없이 새파랗게 맑아진다.
게다가 저 아래로 보이는 산과 들이란...
그리고 비행기보다 저 아래 있는 하얀 구름들이란....
나의 좌석이 창쪽이 아님을 통탄스러워했다.
계속 그렇게 바라보다가 어느새 바다 위로 올라왔다.
바다 위를 날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저쪽 자리의 어린아이만큼 나도 어려진다.
아니, 촌스러운가?
아무래도 좋다.
육지로부터 그렇게 점점 멀어지고 있고, 바다 위로 점점 다가서고 있다.
바다위로 비치는 태양이 간간히 반짝인다.
저 아래로 끊임없이 떨어지면 어떨까... 죽겠지...
하지만 저 하늘과 구름과 바다를 보니 왜 그리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것을 열망해왔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겠다.
어느덧 금새 제주도가 보인다.
처음... 태어나서 내눈으로 처음 보는 제주도...
제주도를 덮고 있는 구름은 없다.
다만 한라산 중턱/정상에 조금 걸려있을 뿐이다.
그래! 제주도야! 내가간다! 기다려라~ 한라산아!!!!
13:00
자전거세상 사장님이 봉고로 마중을 나오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보다 차로 5~6분밖에 걸리지 않은 가까운 거리의 가게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예전에 세운 일정과 새로운 일정, 그리고 찾아가볼 만한 명소들을 체크했다.
나의 목적은 원래 4박5일간 제주도를 일주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라산에 욕심이 생겨서 2박3일동안 제주도 반을 자전거로 여행하고
하루를 한라산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이 일정에 맞춰 사장님이 알려주신 코스는 서쪽 방면 용두암-곽지해수욕장-협재해수욕장-수월봉-송악산-화순해수욕장-중문해수욕장-서부관광도로-제주시 코스였다.
원래대로라면 나의 욕심은
자전거타고 한라산 중턱까지 올라가서 자전거 세워놓고 한라산 등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인의 말을 들어야지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몇군데 코스를 머리속에 염두해두고 출발하기 전 사장님께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아... 뒷 배경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으나... 베낭을 맸는데... 20kg 정도 되지 싶다.
일단 좋은 날씨와 좋은 기분을 가지고 사장님께 인사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출발한다구~~~~
13:30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용두암에 도착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용두암이 별 감흥을 일으켜주지 않는다.
뭐, 남들이 용두암 앞이 부러졌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데...
그것보다는 용두암쪽 가는 길에 있는 조그만 제단이 더 맘에 든다.
무릎정도의 높이로 제주도 돌로 바람막이를 하고 그 안에 자그마한 나무 두그루가 심겨져 있다.
산골짜기에 가면 돌담 아래, 혹은 나무 아래에 조그만 제단을 만들어 놓고 아낙들이 소원들을 빌던 것이 생각난다.
이것도 혹시 같은 의미가 아닐까?
돌벽 뒤에 숨어 있어도 강한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참으로 위태로와보인다.
저러다가 파도나 해일이 덮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이 궁금해진다.
이근처, 누가 무엇을 빌기 위해 심어놓고 세워놓은 것일까....
나도 나무 앞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사진을 찍어간다...
「 숨쉴 틈없이
바람에 몸을 맡겨
바다거품으로 입술을 적시고
뜨거운 태양아래 팔을 벌린다
네가 받는 고난으로
누구를 구원하길래
낯선 곳에 태어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가
돌벽을 쌓고
마른 짚을 덮고
그러면 소원이 이뤄지려나
그러면 고통이 덜해지려나
그래도 꿋꿋이
선명한 초록빛을 발하여
이곳에 새로운 집이라 외치는구나
네 이름은 무어냐
친구까지 있으니
이젠 외롭지 않으냐
행인들 찾아오니
이젠 아프지 않으냐... 」
14:25
약 1시간을 달리다보니 도두항이란 곳이 나온다.
그곳의 등대가 살짝 멋있어보여 등대 곁으로 갔다.
바람도 점점 더워지고 햇살도 점점 뜨거워진다.
그래도 항구 부두의 등대 밑에서 나도 등대처럼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도 누군가를,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을...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그렇게 끊임없이 기다릴 수 있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등불이 될 수 있을까...
빨간 등대 아래 여러 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
「ㅇㅇ야 사랑해!」
나는 누구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은 걸까...
14:40
길이 이상해졌다.
해안도로를 쭈욱 따라가다보니 이호해수욕장이 나왔는데,
길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더니 사라졌다.
에라 모르겠다.
자전거를 끌고 해수욕장 모래사장으로 뛰어들었다.
한 백미터정도 가면 길이 나올 것 같다.
모래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없다.
자전거는 단단한 땅 위를 달려야 한다.
발 끝에서 전달되는 힘이 페달을 돌리고
페달은 바퀴 축을 돌리면서
바퀴와 지표의 마찰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모래위에서는 그 마찰력을 깊은 모래가 흡수한다.
20kg의 군장의 무게는 내 발을 모래 속으로 빠지게 하고
자전거는 자전거 나름대로 모래 속으로 자꾸 빨려 들어간다.
5분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자전거를 끌고 갔으나
오히려 30분동안 자전거를 타고 비스듬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만큼 힘들었다.
출발 한 후 지금까지 흘렸던 땀의 두배가 넘는다.
해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 모습을 힐끗거린다.
벌써부터 이렇게 힘을 빼니 앞으로의 고생이 예상된다.
해수욕장 입구쪽으로 도로를 발견하고 신나게 다시 자전거에 올라탄다.
15:10
내도라는 마을이 나온다.
해안도로를 벗어나 마을 안 도로로 달리다보니 여기저기 공사중이다.
(제주도는 공사중... )
서쪽으로는 이곳 저곳 공사하는 곳이 많았다.
하수도공사라는데...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관광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편할 것이다.
그렇게 단지 예전의 모습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금 더 가다보니 이번엔 외도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제서야 아까 내도라는 마을이 생각보다 많이 오래된 마을이었다는 걸 생각했다.
거기에 비하면 이 외도쪽은 아파트 단지도 있다.
도로를 중심으로 안쪽으로는 아파트단지, 해안쪽으로는 제주도 돌담길이 보인다..
내도와 외도의 차이가 어느정도는 느껴지지만...
어째서 이름이 내도이고 외도일까...
파랗고 빨간 스레트 지붕 사이로 제주도 특유의 집 지붕이 보인다.
도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도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특히나 인상 깊은 것은 돌담이다.
골목골목을 따라 꼬불꼬불하게 늘어서 있는 돌담들...
새까만 돌담들은 그 높이도 모두들 제각기이다.
돌담골목을 따라다니다가 문득 해안으로 나왔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의 공동 어장이다.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서 공동으로 어패류를 채취하는 것 같다.
잠시 구경하고 나오는데
마을의 이방인을 경계하고 마을을 지키려는 듯, 한 집안의 강아지가 짖어댄다.
15:40
외도를 지나 어느덧 다시 경치좋은 해안도로로 나왔다.
적당한 높낮이로 삐질삐질 땀을 흘려 올라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온다.
우리 인생의 길이 모두 평평하고 같은 높이의 길이 아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자전거의 길도 그러하다.
그러나 자전거 길의 오르막은 단지 내리막길을 위한 시험대이다.
은근한 끈기와 체력을 가지고 오르막을 오르지 않으면 내리막에서의 짜릿함은 느낄 수 없다.
괜찮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도 되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도 된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순간은 자전거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몇차례의 오르막 내리막길을 들리다가 다시 나타난 낮은 오르막길을 만났다.
그러다가 갑자기 해변쪽에 이상한 바위들이 보여 자전거를 돌려 내려갔다.
처음 보는 신기한 바위들이다.
용암이 녹아 흘러내리다가 바로 그렇게 평평하게 되었나?
몇백미터 앞까지 편편한 검은 바위들이 해안에 즐비해있다.
분명 이 바위들에 사람의 손길이 거쳐간 흔적이 느껴진다.
알고보니 몇백년동안 이뤄지던 소금캐는 곳이다.
천일돌염전.
돌에서 소금을 얻는다.
이지방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던 흔적이었다.
비록 수십년 전에 끊기긴 했어도...
이렇게 섬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삶을 터득한다.
나는 지금 이 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16:40
애월이란 곳을 지나자 곽지해수욕장이 나왔다.
자전거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사장님이 칭찬했던 곳이다.
가다가 더우면 이곳에서 샤워하면 몇시간동안은 시원할 것이라고 했다.
바로 지하수가 솟아오르는 용천수가 있는 곳이다.
제주도의 태반은 다 돌이다.
용암으로 된 섬이다.
그래서인지 비가 오면 바로바로 지하로 빠진다고 한다.
지하에서 바로 바다로 흘러들어가는데...
그렇게 바다로 흘러들어가다가 바위로 막힌 곳에서 다시 지상으로 샘솟는다고 한다.
그곳이 용천수라고 한다.
펌프가 없는 자연 지하수인 것이다.
이곳 곽지해수욕장의 용천수는 해변으로부터 10~15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바로 바다에서 나와 샤워하면 되는 곳이다.
남탕, 여탕으로 구분 되어있는 이곳에서 용천수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진다.
아니, 도시의 도로 한가운데서 수도관이 터졌을 때 나오는 물처럼 솟아내린다.
어느새 땀과 피로로 뒤범벅되어있던 나에게도 해변에서 솟아나는 차가운 물폭포가 필요했다.
십여분간 떨어지는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뜨거워진 육체가 조금 식었다.
그제서야 뜨거운 태양빛을 다 받은 피부가 걱정된다.
아무리 내가 시골형 피부라고 해도 서울/인천에서 산지 꽤 되지 않았는가.
겁이 나서 로션을 좀 바르고 다시 출발한다.
18:00
곽지를 떠나 시골 논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한림까지 왔다.
이 근처가 1일차 목적지인 '협재 해수욕장'이 있을텐데 보이지 않아 중간에 또 부두로 샛다.
「한림항」
부두로 들어가는 입구에 어제인지 오늘인지 잡은 오징어들이 주욱 줄에 걸려있다.
동해가 아닌 남해, 제주도에서 본 오징어다.
인상적이어서 한 장 찰칵.
저녁이다보니 배들이 계속해서 부두로 들어온다.
저 바다에서 무엇을 잡고 무엇을 기대하고 들어오는 것일까.
부두에 앉아 물끄러미 바다를 쳐다본다.
부두 바로 앞에서 수십미터를 이동하면서 계속 자맥질하는 해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기세를 잃어가는 태양빛이 마지막 안간힘을 바다 위에서 쓴다.
그 빛줄기를 가르며 해녀는 꾸준히 자맥질한다.
부두 안쪽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묘한 상황 속에서 왠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18:20
드디어 협재 해수욕장에 도탁했다.
날이 금방 어두워질 것 같아 야영지에다 여장을 풀었다.
야영지 주변에 자전거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도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겠지... 여럿이서...
1~2인용 텐트를 치고, 짐정리를 하고 가져온 전투식량을 하나 먹고 캔맥주를 두 개 마시니
어느새 8시 반이다.
바다를 볼까 하다가 벌써 어둑해진 밤바다를 보기는 좀 그렇다.
그리고 무지 피곤하고 졸립다.
괜히 자전거여행을 시작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타구니가 따끔따끔해지고, 얼굴과 팔에서는 계속 열이 난다.
어떻게든 오늘 잘 자야겠다.
내일의 일정은 오늘 간 거리의 한배 반이 넘는다.
아직은 유명 관광지보다는 차라리 동네 어촌 구석 돌담이 더 맘에 든다.
21:30
맥주를 마시며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해봤다.
야영지 주변이 시끄럽다.
다들 술마시고 같이 온 사람들끼리 잘 논다... 진짜다... ^^a
나는 좁은 텐트 안에서 혼자다.
여행은 쓸쓸한 것이고 외로운 것이라는데...
지금 이 자리에 누워있는 나는
비록 잠자리는 그리 좋진 않아도...
아직은 쓸쓸하거나 외롭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너무 피곤해서일까?
그러나 아직 여행의 반도 오지 못한, 이제 겨우 시작했다.
이정도가지고 피곤해 죽겠다면 차라리 여해을 떠나지 말았어야지...
이상하게도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몰려온다.
힘들어도 재미있다.
너무 힘들면 재미 없겠지...
오늘은 많이 힘들진 않아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경치, 풍경을 구경하느라 제대로 생각을 못했다.
왜 내가 여행을 혼자 하는지... 제주도까지 와서 하는지...
옆 텐트에서 좀 시끄럽다....
어서 자야겠다....

.
.
.

날이 더워져간다.
하늘은 파랗다.
검은 안경을 쓰고 봐도 파란게 느껴진다.
제눈에 안경이란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 잠시 웃음을 짓는다.
.
.
오이도란 간판이 보인다.
4호선 타고 서울서 내려오다 안산선 만나 쭈욱 끝까지 가다보면 도착하는 곳이 오이도
그러나 나는 전철역을 발견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오이도 옆에 붙어있는 간판이다.
똥섬...
왜 하필 똥섬인가?



지명에 대한 전설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전략... 그리고 이 공단(시화공단) 서편에는 오이도(烏耳島)와 옥구도(玉鉤島)라는 두 개의 섬이 있고, 그 중간에 똥섬이라는 무인도가 있다.
...중략...
...똥섬은 원래 오이도와 뿌리가 연결되었 던 것을 일인들이 잘라버렸다 한다.
이때 잘라진 곳에서 피가 흘러나와 일인들이 모두 겁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 후략]

알고보니 겁나는 이야기다.
어느것이 똥섬인지 몰라 헤맸다.
이 섬인지... 아니면 저 멀리 보이는 저 섬인지...






.
.
.
.
.

오이도 방파제에서 바라본 바다는 거칠다.
동해안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의 파도도 바위와 시멘트와 힘껏 힘겨루기를 한다.
그렇게 일렁이는 거품은 언제나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또한 소리마저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한다.
파도가 부서지며 일어나는 거품방울 속에
바다의 냄새가 물씬 풍겨 하늘로 하늘로 퍼져나간다.
문득 인어공주가 생각난다...




오이도에서 빠져나오는 길에 시화방조제가 보인다.
길이 11.2km. 사람의 발걸음으로는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다.
자전거로 가는데도 40여분이나 걸렸으니...
대부도로 들어가는 길쪽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곳이다.
나오는 쪽 길은 사람들이 인라인, 자전거, 마라톤 등을 하는 곳이다.
토요일 오전, 많은 강태공들이 자리를 펴들고
멀리 멀리 낚시대를 던진다.
분명 던지는 곳은 하늘이다.
하늘의 무얼 낚으려고 할까...



오랜 시간 방조제를 따라 자전거를 끌고가다보니 결국 끝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대부도이다.
정작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줄어들면서 차들이 막히기 시작한다.
게다가 아스팔트길도 사라져 울퉁불퉁한 길들이 나온다.
좌우로는 26호, 24호, 등등의 원조타령을 하는 칼국수집이 나온다.
간간히 횟집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곳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며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아 차라리 영흥도 들어가서 먹겠다고 다짐한다.
중간에 잠시 개뻘이 널찍하게 펴진 곳에 다다르자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처럼 신발을 벗고싶어진다.




다시 길을 달려 제부도와 선재도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목표는 선재도 다음의 영흥도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여느 시골길과 마찬가지다.
바다의 섬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섬을 바다위의 자그마한 공간으로만 여기고 있는건 아닐까.
큰 섬 가운데 논도 밭도 산도 들도 있다.
이곳 대부도에서는 유난히 포도밭이 많다.


자전거를 타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언덕길이다.
언덕길에서는 다리에 힘을 줘야 하고
그래도 안되면 팔에도 힘을 줘야 하고
그래도 안되면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가다가다 힘들면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한다.
나의 주특기인 오기는 이럴때만 발휘된다...
언덕 너머의 내리막길에 불어오는 바람을 상상하면서
고통을 마음껏 느낀다.

몇번의 고통과 쾌락의 왕복 끝에 선재도에 다다르었다.
산속에서 갑자기 바다로 나온 기분이다.
선재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시화방조제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달랐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와
이것저것 볼게 많은 바다는 느낌이 틀리다.
섬과, 해안과, 파도와, 배...
모두가 나와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 위에서는 나는 그저 너무나 초라해질 뿐이고
사람의 목소리,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는
절대에서 빠져나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사람은 사람 곁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목적지인 영흥도까지 갔다 오려면 예상했던 것 보다 시간이 더 늦어질 것 같았고
저녁에 있는 약속시간에 맞추려면 이곳에서 되돌아가야 했다.
양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국물이 아주 시원한 바지락 칼국수를 조용한 식당에서 먹고
다시 자전거의 손잡이를 돌렸다.

돌아가는 길은 또다른 고통이다.
쉬지않고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는 심하다.
이때부터는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다.
그렇게 오로지 나의 다리에 이야기를 하고
나의 팔에 이야기를 하고
나의 머리에 이야기를 한다.
나만의 시간에 빠진다.

뜨거운 태양은 이미 내 몸 곳곳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시원한 바람에 대한 욕망과 지친 근육의 고통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그러다 문득, 다시 월곶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월곶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본 풍경이다.
오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자전거의 여행이 끝나는 순간
나는 새로운 길을 떠나는 생각을 꾸미고 있다.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맹자가 말하기를 인(仁)은 집안을 편하게 하고
의(義)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함이 같다.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 도로고(道路考) , 신경준 -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

김훈 이란 작가님의 [자전거여행]과는 비교하지 말길... 저 혼자 지껄이고 끄덕이는 것이니깐...

6월 6일. 현충일. 조국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그리고 조국을 지키키다가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끝을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7일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1박2일 갈 계획이 얼마전부터 무너졌는데
그래도 비온 다음날의 화창한 날씨를 기대하며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놈의 술때문에 결국 다음날 늦잠을 자고야 말았으니...
눈을 뜨니 여덟시 반이다. 후딱 씻고 자전거를 점검한 후 편한 옷차림을 찾았다.
전날 할인점에서 산 반바지가 마음에 든다.
대신 윗도리가 마음에 차지 않아 몇개를 벗었다 입었다 해본다.
세상에... 내가 옷입는 것 때문에 이렇게 망설이는게 내 생에 몇번이던가...
결국 나시 티 위에 남방을 걸치고 가방을 둘러메고 아파트를 나선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아직 9시 반이다.

도로 옆을 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차를 조심해야 한다.
집에서 다행히 소래 입구까지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최종 목적지로 정한 곳 까지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중간중간 끊겨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인천 남동공단 - 소래포구 - 월곶포구 - 오이도 - 시화방조제 - 대부도 - 선재도 - 영흥도 이다.
약 40km 왕복 80km가 조금 넘는다.

소래포구에 도착했는데, 소래대교 입구부분에 풀밭이 있다.
예전에 염전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풀들만 황량하고 시멘트 구조물이 이상하게 서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데 조그마한 새끼 오리들이 도로 옆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쪽은 항상 차량이 많이 지나가는 길인데 아슬아슬하게 인도 위로 올라가지도 못한다.
인도 건너편의 철조망 안에서는 어미 오리가 울어대며 왔다갔다 한다. 새끼들이 철망 사이로 마실 나왔다가 들어가질 못하나 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커다란 트럭때문에 도로에 쉽게 내리질 못해
위태위태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손을 들고 차들을 잠시 세운 뒤 도망치는 새끼들을 잡아 한마리 씩 다시 철망 안으로 집어넣었다.
새끼들은 풀숲속으로 뒤뚱뒤뚱 거리면서 사라져간다.

오리들을 뒤로 하고 소래대교를 탔다.
작년에 개통한 소래대교. 이전에는 차로는 이곳을 이용할 수 없고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은 소래대교보다 아래쪽에 있는 소래철교를 이용해 월곶과 소래를 왕복했다.
협궤열차가 다니던 철교. 열차는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이제는 월곶과 소래의 시장바닥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버렸다.
협궤열차를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인천에는 열차가 다녔던 흔적이 몇군데 있다.

입구의 한가함에 비해서 안쪽의 시장에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소래대교를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 월곶포구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포구는 한산하다.
소래와는 다르게 이곳 월곶에서는 짠내가 물씬 풍긴다.
길에 널어놓은 소라껍질에서도 나고
포구에 차례차례 널려있는 어선에서도 나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혹은 문을 열고 장사준비를 하는 횟집에서도 난다.
포구의 짠내는 비리고 썩은 내가 난다.
도심 사람도, 산골짜기 사람도 포구의 짠내는 익숙해지기 어렵다.
그러나 산골짜기의 똥통 냄새도, 도심의 매연도 마찬가지리라.
어디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 냄새가 나지 않으랴.
그 냄새는 누군가 어떻게 살아가든간에 삶의 희노애락을 쥐어 짜 나오는 냄새이다.
익숙해지기는 어려워도 거부하지는 말아야겠지...








월곶을 빠져나와 이정표대로 시화방조제로 향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등에는 벌써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전거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바람이 어느정도는 시원하다.
아직 오전중의 차가움이 가시지 않아서일 것이다.

나의 모습을 찍어 줄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한 컷, 두 컷, 세 컷,....






가는 길에 공원을 만났다.
시화공단 입구의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그 길 건너편에 있다.
공원은 잘 되어있었다.
사람들이 오전부터 왔다갔다 사용하고 있다.
공원 안을 가로지르다 깜짝 놀랐다.
한가운데 동물원? 아니, 새를 가둬놓은 우리가 있다.
장끼도 보이고, 닭도 보이고... 갑자기 여러마리 비둘기들이 공중을 돌아다닌다.
왜 공원에 저런 수용소를 마련해야 했을까...


『나의 날개는 부러지지 않았으나 나의 날개로 갈 수 있는 곳은 정해져있다.
나의 날개는 저 아래 걸어다니는 닭과 마찬가지이다.』





점차 올라가는 열기와 태양은 북풍의 바람보다 훨씬 쉽게 나의 겉옷을 벗긴다.
그렇게 반바지에 나시 하나를 걸치고 다시 자전거를 몰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