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
.
.

날이 더워져간다.
하늘은 파랗다.
검은 안경을 쓰고 봐도 파란게 느껴진다.
제눈에 안경이란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 잠시 웃음을 짓는다.
.
.
오이도란 간판이 보인다.
4호선 타고 서울서 내려오다 안산선 만나 쭈욱 끝까지 가다보면 도착하는 곳이 오이도
그러나 나는 전철역을 발견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오이도 옆에 붙어있는 간판이다.
똥섬...
왜 하필 똥섬인가?



지명에 대한 전설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전략... 그리고 이 공단(시화공단) 서편에는 오이도(烏耳島)와 옥구도(玉鉤島)라는 두 개의 섬이 있고, 그 중간에 똥섬이라는 무인도가 있다.
...중략...
...똥섬은 원래 오이도와 뿌리가 연결되었 던 것을 일인들이 잘라버렸다 한다.
이때 잘라진 곳에서 피가 흘러나와 일인들이 모두 겁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 후략]

알고보니 겁나는 이야기다.
어느것이 똥섬인지 몰라 헤맸다.
이 섬인지... 아니면 저 멀리 보이는 저 섬인지...






.
.
.
.
.

오이도 방파제에서 바라본 바다는 거칠다.
동해안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의 파도도 바위와 시멘트와 힘껏 힘겨루기를 한다.
그렇게 일렁이는 거품은 언제나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또한 소리마저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한다.
파도가 부서지며 일어나는 거품방울 속에
바다의 냄새가 물씬 풍겨 하늘로 하늘로 퍼져나간다.
문득 인어공주가 생각난다...




오이도에서 빠져나오는 길에 시화방조제가 보인다.
길이 11.2km. 사람의 발걸음으로는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다.
자전거로 가는데도 40여분이나 걸렸으니...
대부도로 들어가는 길쪽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곳이다.
나오는 쪽 길은 사람들이 인라인, 자전거, 마라톤 등을 하는 곳이다.
토요일 오전, 많은 강태공들이 자리를 펴들고
멀리 멀리 낚시대를 던진다.
분명 던지는 곳은 하늘이다.
하늘의 무얼 낚으려고 할까...



오랜 시간 방조제를 따라 자전거를 끌고가다보니 결국 끝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대부도이다.
정작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줄어들면서 차들이 막히기 시작한다.
게다가 아스팔트길도 사라져 울퉁불퉁한 길들이 나온다.
좌우로는 26호, 24호, 등등의 원조타령을 하는 칼국수집이 나온다.
간간히 횟집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곳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며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아 차라리 영흥도 들어가서 먹겠다고 다짐한다.
중간에 잠시 개뻘이 널찍하게 펴진 곳에 다다르자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처럼 신발을 벗고싶어진다.




다시 길을 달려 제부도와 선재도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목표는 선재도 다음의 영흥도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여느 시골길과 마찬가지다.
바다의 섬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섬을 바다위의 자그마한 공간으로만 여기고 있는건 아닐까.
큰 섬 가운데 논도 밭도 산도 들도 있다.
이곳 대부도에서는 유난히 포도밭이 많다.


자전거를 타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언덕길이다.
언덕길에서는 다리에 힘을 줘야 하고
그래도 안되면 팔에도 힘을 줘야 하고
그래도 안되면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가다가다 힘들면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한다.
나의 주특기인 오기는 이럴때만 발휘된다...
언덕 너머의 내리막길에 불어오는 바람을 상상하면서
고통을 마음껏 느낀다.

몇번의 고통과 쾌락의 왕복 끝에 선재도에 다다르었다.
산속에서 갑자기 바다로 나온 기분이다.
선재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시화방조제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달랐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와
이것저것 볼게 많은 바다는 느낌이 틀리다.
섬과, 해안과, 파도와, 배...
모두가 나와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 위에서는 나는 그저 너무나 초라해질 뿐이고
사람의 목소리,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는
절대에서 빠져나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사람은 사람 곁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목적지인 영흥도까지 갔다 오려면 예상했던 것 보다 시간이 더 늦어질 것 같았고
저녁에 있는 약속시간에 맞추려면 이곳에서 되돌아가야 했다.
양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국물이 아주 시원한 바지락 칼국수를 조용한 식당에서 먹고
다시 자전거의 손잡이를 돌렸다.

돌아가는 길은 또다른 고통이다.
쉬지않고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는 심하다.
이때부터는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다.
그렇게 오로지 나의 다리에 이야기를 하고
나의 팔에 이야기를 하고
나의 머리에 이야기를 한다.
나만의 시간에 빠진다.

뜨거운 태양은 이미 내 몸 곳곳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시원한 바람에 대한 욕망과 지친 근육의 고통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그러다 문득, 다시 월곶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월곶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본 풍경이다.
오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자전거의 여행이 끝나는 순간
나는 새로운 길을 떠나는 생각을 꾸미고 있다.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맹자가 말하기를 인(仁)은 집안을 편하게 하고
의(義)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함이 같다.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 도로고(道路考) , 신경준 -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