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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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일요일 : 진도(접도) - 진도읍 - 우수영 - 해남 남도 - 고천암방조제 - 화산면 - 학기리 - 땅끝마을 (102.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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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금갑해수욕장에 도착해서.....
갑자기 '쾅' 하는 소리에 문득 놀라 눈을 뜬다.
시간을 보니 12시다.
한시간 가량 잠을 잤을까?
무슨 소리지?
해변쪽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해변 멀리 천둥번개가 치면서 비바람이 몰아닥치고 있다.
가로로 되어있는 텐트를 바람이 불어오는 해변으로 세로로 향하게 하고 비가 들어오지 않도록 다시 정리를 해본다.
거센 비바람때문에 텐트가 약간 들썩들썩인다.
그렇게 1시간 가량....
새벽 1시가 되니 어느정도 바람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남쪽 하늘은 아직도 까만 구름 사이로 번개가 치면서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다행이다.
정자가 그나마 비를 막아주겠구나.....
새벽 1시....
자자... 자자.....
다음날 땅끝마을까지 가긴 멀었다....
자자....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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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보니 갑자기 공기가 썰렁해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울리는 천둥소리.......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자자.... 조금 더 자자... 뭐.... 물러가겠지...
하지만 바람이 점점 더 심해진다.
어라?
게다가 정자 아래에 텐트가 있는데 텐트 여기저기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텐트를 젖혀 바다를 바라본다.
남쪽 하늘이 새까맣다.
그리고 천둥번개와 함께 세찬 바람이 점점 더 불어오고 있다.
이런....
지금이 몇시지???
헉... 새벽 4시 반....
제길....
그러다 갑자기 휘이잉 하더니 텐트가 다시한번 들썩인다.
그리고 후두두둑..... 텐트 위로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비가 들어오지 않도록 지퍼를 잠궜으나... 그래도 불안하구나....
그래도.... 조금 있으면 이런 소나기 같은 경우는 그치지 않으려나??
그리고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아니, 청하려 했다.
하지만 30분동안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하는 빗방울이 쉽게 잠을 재우지 못한다.
정자 위도 세찬 비바람에 잔뜩 젖어가고 있고 그 여파가 텐트까지 아우른다.
그나마 다행인게...... 야영장에 텐트를 쳤으면 끔찍했을 뻔.....
그렇게 한시간쯤 지났을까?
잠시 사그라드는 비바람에 안도의 숨을 쉬고 이젠 좀 잘 수 있겠군 생각한다.
콰르릉~!!!!!
바로 머리 위에서 떨어진 벼락같은 천둥소리에 다시한번 정신이 바짝 든다.
그리고.... 바람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다.
10여분만에.... 텐트의 윗등이 휘청거린다.
으아.... 미치겠다..... 텐트랑 같이 날려가겠다.
일단 텐트를 사수하는게 가장 중요...
텐트 바닥에 몸을 꾹 눌러붙이고 몸에 힘을 준다.
거센 비바람이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회오리처럼 몰아닥친다.
끄아~~~~
한시간쯤 그렇게 매달렸을까...
결국.... 텐트는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그래도 날려가지 않기 위해 안에서 발버둥을 쳤고
빗물이 쉴새없이 들어와 결국 텐트 안도 물이 흥건해졌다.
어느새 새벽 여섯시....
잠 자는건 포기 하고 이 비바람이 멈추기만을 바라지만.....
그럴 기세가 전혀 아니다.
넘어진 텐트 사이로 살금 바라보니.... 이건 완전히 태풍이나 다름없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날 전라남도 지역에 호우주의보/폭풍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한다.)








이미 텐트 안은 엉망진창.... 내 몸하나 가누기 어려운 상태에서... 그래도 바람을 이기려고 몸에 힘을 준다.


7시가 좀 넘을 무렵.... 드디어 바람이 잦아들고 빗줄기도 잦아든다.
하지만 텐트 안에서 여전히 움직일 수 없다.
밤을 홀라당 새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그 상태로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더 자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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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에 잠들었던 눈을 뜬다.
바다를 보니 비바람은 확실히 없어졌으나 아직도 하늘은 어둡다.
바닷가에 주민들이 해변으로 흘러나온 톳인지 해초류를 오전에 집어가고....
그런 이들을 바라보면서 일단 밤새운 피곤함을 물리친다.





이것저것 젖은 텐트와 침낭, 베낭 등등 여러가지를 챙겨봤다.
완전히 폭탄을 맞은 듯... 여러가지 짐들이 이리저리 날려가 있었다.
어젯밤 빨래하고 널어놓은 웃도리는 10미터 지난 비닐하우스에서 발견되고.... 후우.....
젖거나 찢어져서 쓸모없는 것들을 추려낸다.
텐트도 버릴까 하다가 다시 폈다 접어보니 문제가 없는 듯 해서 텐트는 그대로 챙기고...
침낭은 완전히 흠뻑 젖어서 큰일이다. 말릴수도 없고....
빨고 밤새 마르도록 널어놓은 옷가지도 하나는 완전히 흙탕이다.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추려내고 세면을 하고 짐을 챙기고 출발준비를 한다.
오전 11시. 금갑해수욕장을 출발한다.
날씨가 아침부터 이상하더니 해수욕장을 출발하자마자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그 상태로 또 비를 맞으면서 달린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가는데...
여귀산 근처 도로를 오를 땐 완전히 기진맥진해진 상태.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 여귀산을 지나니 아마도 오르막은 여기가 마지막인듯....
결국 일요일 오전이기에 다행히 차가 없어서 무리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따갑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달리길 한참....
12시쯤엔 국립국악원을 지나고 나니 이젠 편한 도로가 나온다.
이상하게도 다리에 힘도 붙으면서 페달질이 잘된다.
실컷 달리다보니 어느새 오후 1시가 되어 진도읍에 도달한다.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이대로는 힘드니깐....
진도읍 하나로마트에 들러 아침겸 점심꺼리를 사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다시 35분경 진도읍을 출발한다.
국도는 시원한 왕복 4차선 길로 넓어지고 약간의 오르막을 지나 쭈욱 쭈욱 군내면까지 달린다.
진도터널을 지나 한참 내리막길을 달리니 군내면의 그 삼거리가 다시 나온다.
그리고 금골산도 보이고....
전날의 길을 그대로 따라 다시 진도대교로 향한다.
다행히도 어제와는 달리 가는 길이 어렵진 않다.
빗줄기도 사그라들고 바람도 그리 많이 불진 않고....
젖은 몸에서는 어느새 열기가 물씬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진도대교를 건너는데..... 진도로 들어올 땐 제2진도대교로 건너왔었다.
그런데 갈땐 제1진도대교를 건너려는데....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무슨일이지????
이런..... 어떤 기둥 하나가 진도대교의 중간을 들이박은 것이다.
차량통행은 금지했으나 사람이나 자전거는 이동을 할 수 있는 듯 해서 그 옆을 지나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진도읍에서 출발하던 시간쯤에 바지선이 지나가다가 부딪힌거라고 한다.
저녁에 뉴스를 보고나서야 알았다.
진도대교를 건너 우수영 앞바다에서 진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제, 그리고 오늘 무척 힘들게 자전거로 돌아봤다만.... 힘들어서인지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올 것이다.
진도야.... 나중에 다시 만나자.....


14:45. 우수영에서 음료수로 보충을 하고 다시 출발한다.
지금부터는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다.
왕복 2차선의 18번 국도길을 따라 한참을 달린다.
도중의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는데 아주머니가 신기하다고 하신다.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는 맑아진 하늘의 태양을 잠시 바라본다.
조금 더 달리다 보니 남리가 나온다.
여기서 직진을 하면 18번 도로를 따라 해남으로 향하고
우측으로 꺾으면 77번을 따라 바로 땅끝마을로 갈 수 있다.
이정표에도 그렇게 적혀있으니.... 좀 더 달려보자.
시골길을 오르막 내리막 달리다보니 갑자기 급내리막길 끄트머리에 방조제가 나온다.
앗!!!! 그래... 여기가 바로 고천암방조제다.
영화 서편제에서 아버지와 딸이 거닐던 장소라는데.....
여름이어서 그런지 제대로 그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겨울에는 이곳에 철새때가 모여든다고 하는데...... 언제쯤 다시 보러 올 수 있겠지....
고천암 방조제를 지나 30여분을 달리다보니 화산면사무소 있는 방축이란 곳에 도착한다.
여기서 땅끝마을까지는 앞으로 30km 남았다.
아침에 출발한 시간이 11시였는데.... 그래서 솔직히 땅끝까지 가는게 힘들 것 같았는데
그래도 열심히 달린 터라 대충 시간은 맞출 수 있겠다.
땅끝마을에서 일몰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16시 40분 방축을 출발한지 50분만에....
학기리란 곳에 도착한다. 여기선 땅긑까지 14km 남았고.....



방축에서 학기리까지 오는 길에 해안쪽에 염전도 있다.
바다와 같이 달리던 해안도로는 학기리를 지나 신정으로 가면서 다시 육지를 만나지만
신정을 지나면서 또다시 해안도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몰을 볼 순 없을 듯 하다.
날이 저렇게 흐리면 태양이 지는 모습을 볼 수 없을테니....





아름다운 파도가 그나마 태양빛에 아름답게 울려나온다.
해안도로를 쭈욱 달리다보니 어느새 송호리로 들어선다.
송호리 송호 해수욕장을 지나쳐 땅끝콘도 있는 곳에서 잠시 쉰다.
거의 500미터를 오르막길을 달려야 하는데....
이 오르막길이 장난 아니다.
결국 끌고 올라가는데 너무 힘이 든다.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니....
그래도 이 고개를 넘어야 땅끝마을이 나오겠지....
날도 점점 어두워지는 가운데..... 힘을 내본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 숨을 고르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려간다.
아니, 달려가기보담 너무 가파르니 브레이크를 조절하면서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드디어.... 드디어....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두워져서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어쩔까나... 어쩔가나.....
일단 숙소를 잡아야 할텐데.....
아!! 그러고보니..... 부두에서 바라보니 언덕 꼭대기에 무슨 탑이 있다.
맞아.... 땅끝마을 언덕 꼭대기에 탑이 있다고 하던데.... 음음....
저기까지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다소 늦더라도 올라가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 길이 장난아니게 오르막이다.
휴우...... 아까 마지막 관문을 넘은 듯 했는데..... 또 나오다니..... 그것도 굉장한 급경사가.,....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올라봐야지.....
두어번 쉬고 끙끙대며 올라가니 계단이 나온다.
자전거를 두고 계단을 올라가보니 땅끝마을 전망대가 나온다.
드디어... 드디어.... 도착이다.
감격.... ㅜ__ㅜ
시간은 19:00
하지만 날이 흐려서인지 보길도는 잘 보이지도 않고 일몰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전망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어제와 오늘의 천둥번개를 동반한 낙뢰때문에 한동안 오르는 걸 금지한다고 공고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중간까지는 올라갈 수 있으니.... 그래....
저기라도 올라가서 보자....

멀리 희미하게 보길도가 보인다.
날이 더 좋았으면 좋으련만....
그러고보니 이번 자전거 여행때는 맑은 날이 별로 없었던듯.....
그래도 왔으니... 증거샷~!!




전망대에서 내려와 아래쪽에서 숙소를 잡아본다.
일요일 늦은 저녁이라 어디로 할까 하다가 민박집을 잡았다.
다행히 주말인데도 사람이 없어서인지 2만원에 좋은 방을 잡을 수 있었다.
마음이 편하다.
드디어 땅끝마을까지 온 것이로구나.....
저녁을 먹으면서 가볍게 소주한잔... 그리고 맥주를 마시면서 피로를 달랜다.
드디어 ...
서울에서 출발한지 8일만에 땅끝마을까지 도착했다.
예정보다 이틀이나 앞당겼는데.....
이번 자전거 여행은 관광의 성격은 없는 것으로 봐야지....
하기야.... 이번 자전거 여행의 시도는 10월에 있을 행사의 전초전이니깐....
체력단련쪽으로 봐야할 듯....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그것이 체력단련이던... 관광이던..... 어느것이나 좋다.
게다가 걱정했던 무릎도 예상 외로 멀쩡했고....
이정도 무게를 가지고 하루에 100km 넘게 달렸던 것도 참 신기했고....
하지만 너무 너무 힘든건 사실이다....
내 다음부터 자전거 여행 하나 봐라....
이번이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내 죽어도 하나 봐라....
에효....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