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8월 25일 금요일 : 구시포해수욕장 - 공음면 - 법성포 - 영광읍 - 불갑사입구 - 함평 - 무안 - 목포 (총 거리 : 88.4km)


실컷 자다보니 갑자기 주변이 시끌벅적해진다.
전날 매점 아저씨와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이야기를 나눈 탓에 정신이 몽롱한데... 시계를 본다.
8시라니.... 조금 더 자고 싶었는데... 어차피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일어나보니 어디선가 놀러온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물건들을 내린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열명 남짓했는데....
화장실 갔다 오고 세수하고 오는 사이에 어느새 버스 한대가 도착하더니 2~30명의 사람들이 더 추가된다.
그런데 다소 이상하다.
무언가 약간 틀린 사람들이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니 '영락정신요양원'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환자들과 자원봉사자들과 사회복지가들....
내가 텐트를 친 야영장 주변을 1박 2일동안 있다 가려고 하니 내가 우물쭈물할 틈이 있나...
하지만 그들에게 포위(?)당해 짐을 거의 다 쌀 무렵 한 분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영업활동을 하다가 사회복지가로 변모하신 분인데....
그분이 마음에 닿는 말씀을 하신다.
"예전엔 저분들이 격리의 대상이었지요.... 지금은 사회복귀 활동의 대상입니다...."
문득 얼마 전 사회복지가에 의해 23년인가 26년만에 아버지가 친구에게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생각이 나니... 다시한번 사회복지가의 일을 되새겨보게 된다.
결국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침식사겸 컵라면까지 얻어먹고 나서야..
도저히 시간이 안될 것 같아 억지로 엉덩이를 뗀다.


부지런한 그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구시포 해수욕장을 떠난 시간은 10시 반.....
이제부터 다시한번 출발이다.
아침에 구름이 낀 하늘은 점점 개어온다.
11시가 넘으니 햇살이 무척 뜨거워진다.
아침에 제대로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는데..... 어떻하나....
그러다 11시 20분경 공음면에 도착한다.

따가워지는 햇살에 오전에 흘린 땀을 보충하기 위한 음료를 마시고
얼음물도 큰 것과 작은 것 두개를 마련한다.
시골의 한 구멍가게에 얼음물을 찾기가 힘들지만 주인아주머니가 안쪽 냉동실에 준비를 해놓으시다니... 감사하다.
그늘 아래 마루에 잠시 쉬면서 선크림을 바르고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다가온다.


"아저씨~ 자전거 비싸요?"
"아저씨~ 어디서 왔어요? 어디까지 가세요?"
"아저씨~ 이거 하면 엄마아빠가 뭐라고 안해요?"
"아저씨~ 담배피지 마세요~"
.
.
.
이 녀석들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흘렀다.
가볍게 사진을 찍어주고 다시한번 발걸음을 재촉한다.


11시 40분에 출발하여 7분 정도를 가니 이정표가 하나 나온다.
전라북도의 고창을 벗어난 것이다.
드디어 이제 전라남도로 들어선다.





약간은 감개무량하구나.... 서울을 출발하여 경기도 - 충청남도 - 전라북도 - 전라남도.....
여기까지 6일째.....
오늘의 목표는 '목포'까지다....
음.... 먼저 법성포에 들려보자...


물이 빠진 상태에서 배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나갔다가 들어온 걸까... 들어왔다 나가는걸까....
영광굴비의 모든 것이 이곳에서 시작되는 듯 법성포의 모든 가게에 '굴비'라는 글자가 빼곡하다.





12시 25분. 법성포를 출발하여 22번 국도로 들어선다.
법성포에서 출발하여 만나는 22번 국도는 편도 2차선, 왕복 4차선 도로다.
이렇게 좋은 국도는 갓길이 충분히 넓기 때문에 안전하며
오르막 내리막의 각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기에 참 편하다.
이런 곳에서는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기에.... 40분 만에 12km를 달려 영광읍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원래 영광에서 서쪽으로 빠져 포천-봉남-대전을 거쳐 함평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하늘을 보고는 그 계획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영광 읍내를 지나 23번 국도로 갈아타는 곳에서 잠시 쉴 무렵....
남쪽에서 몰려오는 먹구름 속으로 천둥소리가 들리며 빗방울이 하나둘씩 내려오고 있다.
천둥소리도 쉬는 동안 점점 커지고 있고....




13시 15분 혹시나 해서 영광을 출발하자 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으라차차차차... 스톱~!!
이럴 줄 알고 아쿠아슈즈로 갈아신고 등산화는 가방으로 집어넣었다.
우비는 필요 없다.... 어차피 맞을 비... 갈아입을 옷도 충분하니....
대신 짐이 젖는 것이 문제인데.... 일단 자전거안장 짐꾸러미는 방수가 되는 것으로 확인.
다행히 베낭은 아래쪽에 방수포가 내장되어 있으므로 방수포를 꺼내 베낭을 씌웠다.
그리고 출발....
그리 센 빗줄기는 아니었으며 영광을 지나 안맹(불갑사 입구)쪽으로 건너가자 빗줄기는 사그라든다.
13시 50분 불갑사 입구 4.3km 지점인 안맹쪽 까지 40.6km
여기 농협 옆 하나로마트에서 잠시 쉬기로 하고 음료수를 보충한다.
그리고 바깥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번개와 천둥이 점점 심해지더니 비가 다시 내린다.
멀리 있는 산능성이도 어느순간엔가 희미해지더니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장대같은 비가 진짜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가 그치길 바라며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쉬면서 비오는 풍경을 사진을 찍는데..... 이놈의 번개가 갑자기 머리 위에서 번쩍이더니...
우르릉쾅쾅....
사진 찍다가도 깜짝 놀란다.
13:50 ....
14:00 ...
14:20 ...
이거 안되겠다.... .이렇게 되면 오늘 내로 목포까지 가는건 힘들겠는데....
이 비.... 쉽게 그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더 굵어진다.
얼랠레.....
14:45.... 출발하자....
이 장대비를 뚫고 출발하자.....
빗길에 ... 그것도 앞이 잘 안보일 정도의 빗길을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자살행위...
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오늘이 내 최대의 위기일 듯....
그나마 다행인건 장대비에 차들도 느림보 운행을 하고....
시골길이어서 그런지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고...
무엇보다 다행인건 빗속에서도 잘 보이는 노오란색 베낭커버와 형광색 텐트가 내 뒤를 받쳐주고 있다.
휴우....
하지만 빗길을 달리면서 느낀 점은 오히려 뙤약볕에서 달리는 것 보다 힘이 난다는 것....
이상하게도 빗줄기를 온몸에 맞으면서 추울까를 걱정했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몸에 열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제점은 빗줄기가 얼굴을 때리면서 많은 물이 흘러내린다는 것...
이 점은 선글라스를 껴도 문제가 된다....
눈썹과 선글라스 사이로 물이 줄줄 내리니깐...
이걸 어쩐다.....
달리다 말고 버스 정류장에 잠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한다.
아... 그래... 그 사이, Gap을 지우자.... 메우자... 어떻게????
선글라스를 최대한 눈에 밀착시키고 헤어밴드를 선글라스 위와 이마에 같이 씌우자...
약간의 압박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 갭으로 빗물이 들어오진 않는다...
좋았어... 달려~~~~
영광을 빠져나와 월암까지의 국도는 편도 1차선이었으나 어느새 편도 2차선으로 바뀌고....
약간의 오르락 내리락을 달리다 보니 빗물이 도로에 고이기도 했다.
어느 한 언덕을 지날 때 갓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폭포였다.
그 언덕 꼭대기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출발하려는데 반대편 차선으로 빗줄기를 뚫고 다른 한 라이더가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다.
그분은 선수처럼 보였다.
그냥 가시기에 소리쳐 인사를 했다.
"수고하세요~~~"
그분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다.
다행이다.... 나 혼자... 이런 미친 짓(?) 하는건 아니었어.... ㅎㅎㅎ
길을 가다보니 23번 국도도 중간에 확장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중간중간에 공사구간에서 황토가 빗물에 휩쓸려 도로를 황토물이 가득 메우고 있는 곳도 있었고...
하여튼.....
빗길과 빗물과 빗속을 뚫고 함평에 거의 다 오니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휘유.... 다행이다....
그리고 함평 읍내에 들어가 잠시 쉬기로 한다.
함평에 도착한 시간은 16:00
이상한 지붕이 보이길래 다가보니 작년인가 올 초에 새로지은 마을회관이다...
일단 그곳에 가서 비를 피하고 김밥과 콜라를 사서 요기를 때운다.
비가 점점 심해진다.
상가쪽으로 들어와 쉬고 있는데 빗줄기가 천정을 때리는 소리가 장난 아니구나...
어째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그러길 기다리기 15분정도.... 이젠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하다.











그래도 어쩌랴.... 이대로 기다릴 순 없지 않은가....
함평에서 학교 - 무안을 거쳐 목포까지 가려면 오늘 출발하여 온 만큼을 더 가야 한다.
에효에효... 어차피 비에 홀딱 젖은 바....
또다시 출발해보자....
그렇게 16시 30분 함평을 출발한다.
함평에서 널찍한 국도를 따라 학교까지 간 후 거기서 1번 국도를 만나 무안으로 향한다.
1번 국도를 따라 가다 17:10 쯤 무안읍내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또다시 아파오는 무릎을 잠시 쉬게 해준 다음 계속 달린다.
목포까지 16km 전 지점.... 청계라는 곳에 도착한다.
여기까진 그리 길이 험하지 않아 충분히 올 수 있었는데 드디어 언덕이 나타난다.
목포대학교를 지나자 마자 언덕이 나오는데...
어느덧 비는 그치고 빗방울만 간혹 드문드문 떨어지고 있다.
이 언덕이 그리 쉬운 언덕은 아닌데... 설마설마 했더니 여기서 목포까지 이러한 언덕을 세개 정도 만나게 된다.



어째서 언덕은 항상 찍으면 그 가파름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을까....
비맞은 몸이 으슬으슬해진다.... 조금 더 힘을 내야지.....
청계에서 그렇게 달리길 40분.... 갑자기 고가도로가 나타난다.
18:40분. 서해안 고속도로의 끝인 목포IC에 도착한다.
드디어..
드디어... 목포에 왔다.


목포 IC를 지나쳐 관광안내소에 있는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급승용차 한대가 선다.
그리고 젊은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내려서 길을 물어본다.
"여기서 목포 시내까지 멀었나요?"
"아뇨.. 저기 언덕만 넘어가면 목포 시내에요.... "
"이 근처 찜질방 있나요?"
"저도 잘 모르는데... 혹시 시내쪽으로 가시면 '하당'인가? 거기에 찜질방 좋은 곳이 있을 거에요..."
후후후...
6월달에 한번 와본 기억으로 아는체 하다니...
"사실... 6월에 한번 와봤기에 겨우 기억나는 거구요... 자세히는 잘 모르겠어요..."
자수해야지...
그분들은 차를 끌고 제주도로 들어가기 위해 오늘 서울에서 목포까지 오신거다.
두 분이서 좋은 모습으로 여행을 하시는 듯 하다.
품격이 흐르는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나도 자전거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개를 넘어 조금 내려가다보니 터미널 가는 이정표가 나오고 그쪽으로 꺾으니 익숙한 곳이 나온다.
6월에 묵었던 찜질방이 있는 곳이다.
근처에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하면서 '마루'님께 연락을 드리니 바로 어디어디로 오라고 하신다.
자전거를 찜질방에 세워두고 두달만에 마루님을 만나게 되었다.
시내의 한 바에서 마루님을 만나 맥주 한잔을 곁들인다.



마루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날 코스에 대해 문의해본 결과
내일 하루는 진도를 투어하기로 결정한다.
마루님께서 진도에 가볼 곳 몇 군데를 말씀해주시고 추천해주신다.
쉽게 생각했던 진도 투어가 이번 자전거 여행의 최대 고비가 될 진 이날 저녁까진 나도 몰랐다.
꽤 늦은 시간까지 술한잔 하고 무사히 마루님께서 택시까지 태워주셔서 찜질방으로 향했다.
하루종일 비에 퉁퉁 불은 몸과 마음을 푸욱 녹인 채 잠에 빠져든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두시....
아마도...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틀정도면 갈 수 있을 듯.....
어느새 자전거 여행도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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