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계획이란 것이 언제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혼자서 다니는 여행은 원래 계획 없이 나름대로 그때그때마다 틀린것이 아니겠는가?
뭐, 이렇게 위안을 삼아도 분명 휴가계획이 틀어진 것에 대한 슬픔과 괴로움은 어쩔 수 없다.
20일부터 22일까지의 3일.
무엇이 문제였을까?
일단 19일 저녁 회사 사람의 고민상담을 들어주느라 늦게까지 술마신 것이 죄.
그 덕에 집에 들어가서 어렵사리 짐을 꾸리는데 결국 큰거 하나 빠뜨리고 쓸모없는 것들만 잔뜩이라니.
20일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7시에 집을 출발했다.
경남 울산, 아니 정확히는 양산인가?
아무튼 통도사 IC를 가기 위해서 빨리 집을 나왔다.
천안IC -(경부고속도로) -청원JC -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 낙동JC - (중부내륙고속도로) - 김천JC - (경부고속도로) - 통도사IC 까지 빠져나와 통도사 앞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20여분. 약 320km를 달려와 준비를 마친다.
아직까지는 청명한 하늘. 2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땐 출발때부터 비가 와서 많이 고생한 적이 있었지.
슬슬 준비를 하고 매표소를 지나 숲길을 따라 걷는다. 멀리 위로는 시살등에서부터 영축산 정상까지 한눈에 보이고 저 능선을 따라 걷다가 정상에서 신불산 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다.

보통 매표소를 지나 시살등이나 한피기고개로 오를려면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정법교까지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서 헉헉대면서 걷는다.
아스팔트도 금새 달궈졌는지 열기가 장난 아니다.
겨우 정법교쪽으로 돌아와보니 어느새 들판의 벼에는 가을이 여물어간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정법교 앞 삼거리에서 잠시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른다.
예전에는 백운암쪽으로 해서 바로 한피기고개를 만났었는데 오늘은 시살등쪽으로 가야 한다.
입구에서는 한 아저씨가 주차관리를 하고 있었고 그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아저씨를 뒤로 하고 11시 반부터 본격적으로 길을 따라 오른다.
시살등으로 오르는 길은 널따란 임도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왜 난 중간에 샛길로 빠졌을까?
그 샛길은 무척이나 가팔랐는데 어깨에 맨 베낭의 무게때문인지 순식간에 점점 지쳐간다.
2개월을 넘도록 산을 못타다가 지친 일상에 찌든 내 몸이 이제는 더이상 버티지 못함인가?
중간의 계곡물에 잠시 몸을 쉬게 하고 다시 열심히 오른 결과 시살등 바로 아래의 고개에 도착했다.

이런... 시살등으로 바로 오르는 것 같더니 그 전의 고개에 오른거네.
저 멀리 시살등이 보인다. 에고에고 ... 저기까지 가기는 너무 힘들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1시 반.
8시에 먹은 휴게소의 라면이 전부였기에 여기서 요기를 채우고자 베낭을 내려놓았다.
어라?? 이런... 젠장...
라면도 있고 물도 있고 버너도 있고 코펠도 있는데 왜??? 가스가 없단 말이냐~~~~
ㅜㅜ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부셔서 스프를 뿌리고 생라면을 물과 함께 먹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거 정말 안넘어가네... 입에서 턱턱 막히고...
그나마 조금은 요기를 채울 수 있었으나 결국 라면은 절반도 먹지 못했다.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과 구름이 몰아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다.

뜨거운 햇살을 구름이 점점 가려주고 있다. 저 시원한고도 아름다운 뭉게구름들...
너무 졸려서 매트를 깔고 30여분 잠을 청한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살살 꿈나라로 보내는구나...

이크크... 눈을 뜨니 벌써 3시다.
이거 위험한데... 잘하면 신불산쪽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야간산행을 할 수 있겠는데...
게다가 정상쪽으로 향하다보니 오른쪽 산아래에서부터 안개가 바람과 함께 피어오르고 있다.
중간중간 쉬면서 가기는 했는데 저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진다.
멀리서 보이던 산 정상과 신불산의 모습이 금새 안개에 가려져서 전혀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가는 길 중간에 다른 쪽 길로 빠지는 바람에 또 시간 소비하고...
다시 원래 루트로 돌아와 정상쪽으로 향한다.
게다가 아까의 그 고개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에 나 있는 수많은 수풀들은 이쪽으로 사람들이 잘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길을 반팔과 반바지차림으로 갔으니 날카로운 풀잎에 얼마나 베였는지....



안개는 더욱더 심해지고 배는 더욱 더 고파지고 물은 점점 더 없어지고...최악이다.
정상에 도착하니 어느새 시간은 5시가 다 되어가고...
정상에 있던 휴게소(정확히는 대피소)는 평일이라 문을 닫았고 아무도 없다.
여기서 가스라도 빌려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포기....
정상은 이미 안개로 가득 차 10미터 앞이 보이질 않는다.
야간산행이라도 할 예정이었지만 이 상태라면 가다가 길을 잃어버릴 것 같다.
어느쪽이 신불산쪽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음.... 왜이리 이 산은 나를 거부하는지 원.....
20여분을 쉬면서 안개가 걷힐까 기다려봤으나 점점 더 짙어지는 안개에 어두워지는 사위.
어쩔 수 없이 신불산으로 가는 길은 포기하고 통도사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신불산으로 가는데 1시간 반, 내려가는데 1시간 반 정도로 해서 3시간이면 야간산행도 가능하겠다만
이 안개속에서 처음 가는 산길을, 게다가 혼자서 갈 수 있을 만큼 무모하지는 않다.
결국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내려와야 했으나 요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안개가 사방팔방에 깔려있고 이 습기 때문에 흙길이 매우 미끄러워
내려오는 도중에 몇 차례나 미끄러지고 굴렀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으나 한번은 심하게 미끄러지는 바람에 두개의 스틱 중 하나가 완전히 휘어버렸다. 어허허허.... 두달만의 산행이 이렇게나 고생스럽다니....
결국은 10시 반부터 시작된 산행은 8시가 되어서야 다시 통도사 매표소 주차장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이 몹쓸 체력... 삼마도 많이 죽었구나....
약 9시간의 산행동안 먹은 거라고는 생라면 1/3, 물 2리터, 비타민제 2개, 사탕 2개....
이건 산행이 아니다. 완전히 생존훈련이 아닌가.... 쩝....
그러기에 산행 후 몸 보신을 해야 했다.
일단 첫날이므로 산채정식에 동동주 한통을 먹고 모텔로 향했다.
입가심으로 캔맥주 마시고 뜨거운 물에 몸을 뉘이고 이제 자려는데
이런... 회사 업무때문에 전화좀 하고 자려는데 또 전화가 와서 전화통화 하고 자려니까 12시가 훌쩍 넘었다.
다음날 눈을 뜬 시간은 10시 반.
물론 중간에 몇번 눈을 뜨긴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더라.
결국은 이틀째 산을 다시 타는 것은 포기 하고 푸욱 쉬고 1시에 모텔을 나온다.
그리고 언양으로 달려가 유명한 집에서 언양불고기를 먹어본다.


잠깐의 휴식이라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를 안볼 수 없지 않겠나.
울산으로 달려가 바다를 본다.
이미 철이 지난 바닷가라 사람도 별로 없고
바람이 워낙 거세게 불어 파도가 높아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시원한 파도와 바람을 맞으며 잠시 휴식을 즐긴다.
다시 통도사 입구로 왔다.
저녁을 돼지국밥을 먹으면서 핸드볼 준결승전 노르웨이전을 보다가 안타까워 하고
오랜만에 C1 소주를 맛본 다음 찜질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그리고 22일. 다음날 7시에 일어나 씻고 나와서 다시 산을 타기 위해 지산마을로 달려간다.
지산마을에서 다시 영축산 정상으로 오른 뒤 신불산으로 가기 위해서인데...
그런데...
아침부터 비바람이 장난 아니구나... ㅡㅜ
아~ 신이시여~~~
영남알프스, 그 중에 이 영축산은 정녕 나를 버리는 건가???
이번이 두번째인데 또 내 발길을 막는구나... 아흐~~~
아쉽지만.... 정말 아쉽지만... 정말 안타깝지만... 오늘의 일정은 이걸로 끝이다.
다음에는 정말 몸과 마음을 다시금 준비를 하고 올테니... 기다려다오...
아마도 가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기다려?? 응???
결국 이번 휴가는 실패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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