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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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길을 꾸준히 걷고 걸어 1시간이 조금 넘어 천황봉에 다다른다.
이제 막 어슴푸레 밝아오는 하늘에 천황봉의 꼭대기의 모습이 드러나고...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의 일출을 보기 위해 자리를 맡고있다.


같은 일행 중 한 커플...
알게 된지는 몇년, 사귄지는 100일 조금 넘은 커플인데.... 남자분이 대단하시다.
천황봉 꼭대기에서 100일 기념 반지와 청혼용 목걸이를 정상에서 해드린다.
그분들께 따뜻한 커피를 드리려다...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서 다른쪽으로 향한다.


아... 내 다리가 어디갔는가... 짧은 다리...
지난번 소백산 국망봉에서는 그래도 조금은 길었던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오늘의 일기를 보니 일출을 보기에는 그른 듯 하다.
하기사,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그 천황봉 일출 아니던가.
그러나 남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겨울에 오면 일출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나도 다시한번 겨울철에 올 준비를 해야겠지...


동쪽에서 90도를 돌려 북쪽을 바라보면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고 산허리를 휘감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시 동쪽. 멀리 희미한 운해가 보이지만 아무래도 일출은 이미 그른 듯.


운이 나쁘게도 여기서 갑자기 카메라 배터리 케이스 뚜껑이 열리면서 배터리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4개 중 3개를 찾았으나 그걸로 카메라를 다시 작동시킬 순 없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 카메라로 몇 컷을 찍고 아쉬움을 달랜 채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온다.
장터목에서 비박장비를 철수하고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한다. 2박 3일간의 산에서의 식사는 마지막이다. 어젯 밤에 이야기를 나눴던 다른 사람들하고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백무동으로 내려가서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하고 그 팀이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여장을 다 꾸린 후 하산을 시작한다.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꽤 험하다. 오른쪽 무릎의 고통때문에 스틱을 이용해 맨 뒤를 따라간다. 3~4시간 가까이 내려와야 하는데... 중간의 어느 샘이 있는 곳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얼굴에 수염이 가득 덮힌 한 분께서 커피를 주시고... 그 커피와 샘물을 번갈아마시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1.8km인가? 일행들을 뒤로 하고 한번 하산길을 달려보기로 했다.
두 스틱을 이용하여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려 백무동 입구에 다다르니 딱 30분 걸렸다. 온몸에는 땀이 흥건하고... 먼저 내려온 자의 특권일 수 있는 캔맥주 한 캔을 먼저 들이킨다.
그리고 시원한 물로 얼굴과 머리를 씻고 발도 닦은 후 나머지 일행들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동안 내 몸을 지탱해주느라 수고한 내 배낭.. 그리고 스틱...


씻기 전의 발이다. 발목에는 땀띠들이 나있고... 발목 아래와 위의 색깔이 선명하게 틀리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 동네가 호두로도 유명한가보다. 가게 아주머니가 호두를 말리고 있다.

나머지 일행들이 내려온 후 다 같이 캔맥주로 2박3일간의 산행을 기념하며 건배한다.
(저 반지 낀 손은 위에서 말한 천황봉에서의 백일기념의 여주인공이다.)


뒤에서 내려온 일행들과 만나 같이 식사를 하기로 하고 장소로 이동한다.
중간에 내려가다 만난 식당은 샤워가 가능한 식당이어서 10명이 자리잡는 동안 차례대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내가 속한 팀은 서울/천안에서 내려 온 팀이고 다른 팀은 부산/경남쪽에서 올라온 팀이다.
이들이 지리산에서 만나 인연을 만들었으니 산에서의 인연은 언제나 새롭다.

이들과 같이 헤어지면서 언젠가 다시만나길 빌며 식사 후 헤어지고
나는 이 일행 중 차를 가지고 지리산 온천으로 가는 일행들 차에 얻어타고 구례로 향한다.
도중에 성삼재 아래에 들려 지난 새벽에 올라갔던 지리산 초입의 모습을 대낮에 다시금 구경해본다.
저 지리산자락에 많은 것을 묻고 오고 뭍히고 왔다.


뒤에 보이는 성삼재.... 언젠가는 다시 오게 될 그리운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지리산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같이 간 일행 중 한명이 보내온 메일처럼, 무언가를 정리하러 갔다고 생각했지만
다녀오고 난 후에는 무엇이 정리되었는지도 모르겠고 오히려 산의 모습만 가슴에, 머리에 가득 찬 모양이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2박 3일의 추억을 뒤로하고 나 홀로 차를 끌고 천안으로 올라간다.
연휴 마지막 날이다. 올라가서 내일 하루 더 쉬면서... 빨래 생각이 먼저 앞선다.
수고했다. 삼마.
우리나라의 어느 산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지리산은 특별해보인다.
지리산은 산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끌어모은다. 모아서 올라오는 산이 아니라 올라와서 모이게 만드는 산이다.
34년만에 처음 만나는 지리산. 드디어 두 가지 소원 중 하나를 풀었다.
다음은 설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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