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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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느라 피곤합니다.
시간을 보니 운전을 시작한지 네시간이 지났습니다.
다섯시가 다 되어가니 문득 무얼 할까 생각합니다.
부석사가 떠오릅니다.
일몰을 받은 산자락이 떠오릅니다.
다시 보고싶습니다.
풍기 IC를 빠져나오자 마자 부석사로 차를 돌립니다.
다행히 다섯시가 조금 넘겨서야 부석사에 도착합니다.
여전히 주차장에서는 주차요금 3,000원을, 그리고 매표소에서는 1,600원을 받습니다.
이상하게도 예전엔 '뭐가 이리 비싸~!'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젠 '고향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은 듯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발걸음을 서두릅니다.
겨울이 다 갔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곳 입구는 춥습니다.
분수대도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된 듯 메말라있고,
몇몇 식당은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초입에 널려있던 사과나 칡 등을 팔던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안계십니다.
다만 생긴지 30년이나 되었다는 한 식당의 현수막이 눈에 들어올 뿐입니다.

매표소 옆의 안내도를 잠시 쳐다봅니다.
다 가본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못가본 곳이 있습니다.
23번 서부도와 31번 동부도는무얼 하는 곳인지,
32번 원융국사비각은 무엇인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천천히, 그러나 약간은 잰 걸음으로 길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매표소에서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은 예전과는 달리 꽤나한산한 풍경입니다.
다만, 점점 노랗게 물들어가는 빛을 받아서인지 점점 따뜻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해가 기울어지면 기울어질 수록 더 따뜻해질것 같습니다.









일주문 길을지나 당간지주를 거쳐 천왕문으로 들어가는입구도 노란 색을 발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천왕문 안의 사대천왕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사대천왕의 발 밑에 깔린 죄지은 자들의 모습이 더욱 무섭습니다.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곳을 찾는 사람을 겁주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양루도 여전히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라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다는생각이떠오릅니다.
자연의 빛을 받아 저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신기합니다.





천년 이상을 그자리를 지켜온 부석입니다.
예전엔 부석이 그렇게 신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감흥이 사라집니다.
돌이 떠오른다, 아니면 공중에 뜬 바위...
이런건 어릴 적의 머리속의 상상속에 구현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나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부석의 신비함 보다는 오히려 안양루의 처마 조형,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
석등에 새겨진 관음보살과 여러 기와지붕에 관심이 더욱 갑니다.
이날도 그렇게 다양한 것들을 보려고 왔습니다.
하지만 해가 지면서 나를 잡아끈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이라고 할까요.
태양이 서서히 내려앉으면서 능선의 모습이 하나둘씩 그림을 만들어 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조용하게 안양루 옆에서, 무량수전 옆에서, 삼층석탑 옆에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연스럽게 손이 카메라로 가지만 이 카메라로는 내 눈에 새겨진 순수한 풍경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저녁 6시가 되자 갑자기 북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놀라 소리가 난 방향을 찾아봅니다.
범종각에서 스님 한분이 북을 치고 있습니다.
범종각은 천왕문을 지나 안마당에 올라오면 있는 곳이며 안양루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범종각에는 눈에 띄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커다란 북이며, 하나는 바깥에서 안쪽으로 내려오는 용(龍)이 좌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모양도 하나 걸려있는데 물고기 배는 깎여있습니다.
북을 제외한 것이 모두 나무입니다.
스님은 북채를 들고 운율에 맞추어 두둥 두두두둥 둥두두둥두두 치고 있습니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경내에 북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사진을 찍다보니 다른 스님께서 다가오시더니 사진은 찍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때부턴 팔짱을 끼고 구경만 했습니다.
다른 스님도 북채를 드시더니 저 위의 스님 뒷편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 스님과교대를 하시더니 아까와는 다른 힘과 운율로 북을 칩니다.
아까 그 스님은 이번 스님의 북소리가 끝나자 마자 나무로 된 고기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북채인지 아닌지 모를 나무막대기를 물고기의 배부위 파인 곳에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양손을 번갈아가며 밀고 당기는 듯 소리를 냅니다.
딱딱딱딱...
북소리와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끝날 무렵,
"두웅~"
종소리가 울립니다.
종각에 묶어 놓은 종을 또 다른 스님께서 치고 계신가봅니다.
한번 울린 종소리의 여운이 머리속을, 그리고 가슴 속을 오래 울립니다.
또 한번 종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안양루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 앞의 자연을 바라봅니다.
서서히 노란 색에서 검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능선과 주위속에 고요함이 더욱 커집니다.
분명 주기적으로 종소리가 들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펼쳐진 그림은 점점 더 머릿속을 조용하게 합니다.
아니, 오히려 종소리의 울림에 주변은 점점 더 고요해지지만 왠지 가슴은 점점 더 심하게 고동을 칩니다.
참으로 묘한 기분입니다.
몸은 고요 속으로 가라앉는데 마음은 점점 두근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란스럽거나 숨이 가쁘거나 머리가 복잡하거나 어지럽지는 않습니다.
편안합니다.




그렇게 조용하게 어둠이 깔릴 때 즈음
종소리에 맞춰 응향각 쪽에서 목탁소리가 들립니다.
목탁소리는 종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잠시 후, 무량수전 안에서 합창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무량수전 안의 스님들께서 불경을 외는 소리같습니다.
아니, 불경이 아니라 무언가... 그러니까 불교에서도 합창곡 같은 그런 노래를 부릅니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여느 성가대 못지 않게 참 곱습니다.
맑고 높기도 합니다.
왠지 모를 벅찬 감정이 솟아 오릅니다.
어둠 속을 발걸음을 옮깁니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옵니다.
안양루의 돌계단을 지나, 범종각 아래의 계단을 지나 천왕문을 지나칩니다.
스님들의 합창과 목탁소리와 타종소리는 점점 사라져가고
일주문을 지나니 이젠 들개인지 무언지 모를 산짐승의 소리가 들리고
부엉인지 무언지 모를 날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이걸 바랬나 봅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이었나 봅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날 보고 듣고 느낀 그 순간순간이 분명 지쳐있는 나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 것 만은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걸 바랬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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