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12월 11일. 토요일.
일하는 토요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날 휴가를 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7시에 떠지는 눈.
라디오 소리를 뒤로 하고 다시 눈을 감지만... 8시 반이 되니 더이상 잠도 오지 않는다.
전날의 숙취가 아직 남아있음에 냉장고 문을 열고 얼마 남지 않은 PET병의 결명자차를 마신다.
시원하다.
정신을 차린 후 잠시 책상에 앉아본다.
본능적으로 컴퓨터를 켜는 나는 아무래도 여러가지 중독 증세에 몰려있을 법 하다.
어젯밤 보다 만 올드보이 DVD의 헤리놀즈 코멘터리를 보다보니 아차차 시간이 벌써 10시다.
메신저에 접속하여 여직원에게 어젯밤 작성한 자료를 차장님 전해드리라고 전하고
1시간 뒤에 회사 들린다고 한 후 씻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에 가야 하는데...
여자 후배 결혼식이고... 뭐 사진 찍을 일도 없을테니...
깔끔하게만 하고 가자고 마음먹은 뒤 넥타이 없이 와이셔츠에 양복바지,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입던 교직원 잠바를 걸쳤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11시가 넘어서 회사로 가는 길은 오랜만이다.
출근시간 때 처럼 도로에 차들이 바글거리지도 않고
등교시간 때 처럼 인도에 학생들이 줄지어 있지도 않다.
느긋한 마음으로 회사로 가서 나머지 일들을 마무리 하고 12시에 회사를 나온다.
코스는 신림역이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음악을 듣고... 창밖을 구경한다.
책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2호선을 갈아타고 갈 즈음 선배에게서 연락이 온다. 식장이 어디쯤이냐고...
찾다찾다 못찾아 결국 나랑 같이 역에서 만나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형님은 결혼하신지 1년 반이 넘으셨다.
지금 딸애가 곧있음 백일이다.
안본 사이에 얼굴에 살이 붙으셨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고 계셨고,
감기에 걸려있었다.
안본 사이에 몸이 좋지 않게 되고, 회사일도 힘들게 되고...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시다.
그럭저럭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결혼식장으로 들어가 신랑될 사람을 만났다.
2시 신림동 웨딩캐슬에서 결혼하는 이 커플.
신랑은 재수해서 나이가 동기보다 한살 많은 97학번 동아리 후배다.
여린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책임감이 대단하여 학교를 몇년 째 그만 둔 채 집안일을 하고 있다.
집안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말끔하게 옷을 입은걸 보니 뽀대나기는 하는데... 이마가 너무 튀어나왔구나.. 흘흘..
신부는 95학번이며, 역시 동아리 후배다.
한동안 나와 커플? 은 아니지만 내가 정부노릇을 해주었다.
이 친구들의 러브스토리는 이렇다.
내가 전역 후 복학한 97년.
95학번 여자 후배는 그 사이 몇번 얼굴을 봤었고
97학번 남자 후배는 1학년으로 동아리에 들어온 상태.
아마도 97학번 녀석(사정상 K군)이 먼저 95학번 여자후배(사정상 K양)에게 고백을 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K양은 그걸 물리치고 생활하다가 1학기가 끝나고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남은 K군은 그럭저럭 있다가 동기와 잠시 사귀었지만 금방 끝났고
98년에 K양이 돌아오자 다시한번 대쉬를 한다.
몇번의 거절과 부탁과 고백이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K양은 K군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얼마 해보지도 못한 연애시절은 금방 끝이 나고 K군은 군대를 가야 했다.
둘 사이에 꽤나 친했던... 아니 선배로서 존경(?)받던 나에게 K군이 부탁을 했다.
자기 군대 다녀올 때 까지 K양을 지켜달라고.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냐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신이 군대 가 있는 동안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나보고 꼭 지켜달라고 했다.
나에게 K양을 맡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거니와
다른 사람이 K양에게 접근할 수도 없을 것이거니와
K양도 안심하고 2년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K양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 결과...
난 2년동안 K양의 정부(?) 노릇을 해줘야 했다.
데이트, 여행, 조언, 술동무, 영화....
물론 가난했던 나로서는 그 비용을 다 충당할 수 없었고...
K양도 자신이 어떤 상황인줄 아니까 오히려 K양이 비용을 댔다라고나 할까...
그렇게 2년동안 지냈는데도... 2년동안 소문도 안났고 둘 사이에 무슨 일도 없었다.
그리고 2년 후, K군이 전역하는 순간 그녀석의 손에 K양의 손을 쥐어주었다.
이 후...
K양이 나를 몇번 찾기는 하였으나 일부러 멀리했다.
한때 K군이 휴가 나와 술마시면서 했던 말을 기억한다.
형에게 질투한다고...
가끔... 일년에 두어번 만나긴 했다.
그리고 여럿이서 술마시기도 했다.
물론 둘(K양과 나) 사이의 비밀이 있긴 했으나...
시덥잖은 것이고 나중에 K군도 다 알게 되었다.
신부대기실에 있는 K양을 만났다.
K군과 K양을 난 좋아한다.
이녀석들 결혼날짜 잡고는 나에게 첨으로 연락했다.
회사 일 때문에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니까 굉장히 아쉬워하고 K양은 울기까지 했다.
그러다 일주일 전에 갈 수 있다고 하니까... 둘다 굉장히 좋아했다.
K양 아름다웠다.
녀석의 이쁨과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녀석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식사를 하고 내려오니 식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몇컷 찍었다.
너무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어라? 사회보는 여자는 K양 친구이고.. 나도 아는 얼굴이구나...
정부노릇 할 때 같이 어울려 놀았던 친구구나... 흘흘...
학교 후배들이 많이 참석 못했다.
하필이면 시험시간과 맞물렸으니...
아쉽다. 정말...
시간이 없어 사진도 찍지 못하고 빠져나왔다.
됐다.
나중에 집들이 때 1박 2일로 녀석들 집에서 자고 가기로 약속하고 식장을 빠져나왔다.
행복해라.
난 이제 미아역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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