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주말 - 소백산(2)
色+樂+狂2005. 1. 31. 20:30
비로사로 오르는 길에 싸락눈이 오다 말다를 반복한다.
헐떡이는 사람들과 함께 달밭골을 지나는 등산로를 오르다 이상한 바위와 대면했다.
덩쿨인지 등나무인지.... 너무 두꺼워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나무둥치가 커다란 바위를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한이 맺혔길래...
아니면 얼마나 둘이 사랑하길래...
아니면 얼마나 집착하길래 그렇게 온몸을 칭칭 휘감고 있는 것일까...
가까이서 봤더니... 어떻게 보면 바위에서 저 나무둥치가 솟아올라 바위를 휘감은듯 보이기도 하다.
약간은 신비한, 약간은 섬짓한 느낌으로 바위를 바라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올라가다 뒤쳐진 이를 기다리고...
한참을 올라가다 뒤쳐진 이를 기다리길 몇 번.
어느새 싸락눈은 꽤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눈이 아닌 싸락눈인 상태로 내리던 눈은 사람들의 옷에, 베낭에, 그리고 머리위로도 슬슬 쌓여간다.
싸락눈이 내리는 양과 함께 시야도 옅어져갔고 바람도 거세어진다.
비로봉에 오르는 사람들도 많고 비로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다.
내려오는 한 소년의 헤어스타일이 완전 백발의 오대수다.
오대수가 15년이 아니라 30년을 감옥에 있었으면 그랬을 백발...
문득 산길을 가다가 갑자기 내려오는 이도 올라가는 이도 없는 자그마한 길이 나온다.
마치 팀버튼의 영화속에 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저 길을 걸어가다보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
벌써 주변 나무에 싸락눈으로 인한 눈꽃이 피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일행들을 독려했다.
싸락눈을 맞으면서 비로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옷과 머리, 모자, 가방에 성에가 하얗게 껴 있었다.
계속 올라가면서 샘터까지만 가면 300미터 남았다고 독려했으나 시간은 예상보다 많이 걸렸다.
샘터에 1시가 다 되어서야 샘터에 도착했으니 거의 두시간 반이나 걸렸다.
나혼자 산에 오르던 생각만 했던 것이 첫번째였고
모두의 산행속도를 맞추지 못했던 것이 두번째... 잘못이지 싶다.
일행들은 모두 산행을 자주 한 사람들이지만.... 소백산.... 그것도 눈이 내리는 겨울산은 힘들다고 한다.
하아....
샘터에서 억지로 억지로 올라가 비로봉 바로 밑에서 옷을 다시 챙겨입자고 했다.
드디어 바람이 다가오는 것이다.
바람에 대해 무지 겁을 줬었는데.... 흐흐흐
나도 겁이 나서 재킷 안에 조끼를 다시 껴입었다.
다른 일행들과 같이 아이젠을 신고 비로봉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딛기 시작했다.
비로봉 마지막 단계는 백 몇개 정도 되는 나무계단이다.
이상하게도 여기 계단은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꼭대기에 올라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꼭대기에 올라간 순간.... 주변 10여미터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볼따구를 세찬 눈보라가 두들겨팬다.
아니.... 눈보라는 세찬 바람에 의해 바늘처럼 피부를 콕콕 찌른다.
엄청난 바람에 의해 능선은 볼 수도 없었고.... 억지로 비로봉을 나타내는 비석에 기대어 사진을 찍는다.
빠질 수 없는 셀푸샷!
국망봉쪽에서 비로사쪽 길을 향해...
국망봉쪽으로 쌓여있는 돌더미들...
상황을 보니 절대 국망봉이나 연화봉쪽으로 능선을 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다른 사람들 몇명은 완전무장을 해놓은 상태로 연화봉으로 발길을 돌려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갔다.
세찬 바람과 눈보라를 피해 언덕 아래 사람들이 대피해놓은 곳으로 가서 일행에게 물어봤다.
이상태로 능선을 탈 수 있겠냐고.... 아마도 안될것 같다고들 한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비로봉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비로봉 오르는 나무계단 옆에 피어있는 철쭉에 핀 눈꽃.
일행중 여성분의 머리카락 조차도 눈보라에 꽁꽁 얼고 살짜쿵 눈꽃을 달아 백발이 되었다.
다시 샘터로 돌아온 시간은 어느새 오후 2시가 가까워졌다.
올라가기 전 김밥 두줄로 버텼던 일행들은 배고픔에 다시금 눈을 맞으며 점심상을 폈다.
동생 여친이 해준 4줄의 김밥 중 남은 두줄, 각자의 컵라면, 누룽지, 팩소주, 오렌지, 방울토마토..
그리고 풍기에서 산 소백산 솔 막걸리... 맛나더군...
내리는 눈을 펑펑은 아니지만 열라게 맞으면서 식사를 마무리하는 나와 남자분.
20여분동안 밥을 먹고 자리를 정리했다.
그동안 머리와 재킷, 가방에 붙은 눈을 털고 일어나 하산을 시작했다.
20여분을 더 내려오는 동안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빠른 구름 사이로 태양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날이 개고 있는 것이다.
어느정도 내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비로봉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비로봉.
30분만 기다렸다면 비로봉에서 태양을 보고 아름다운 능선을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비로봉이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몇 컷 더 찍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빛을 받은 눈꽃은 더욱 하얗게 빛나고...
아쉬운 빛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열심히 하산을 시작했다.
비로봉에서의 하산길은 그리 재미있진 않다.
어떻게 보면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오는 것이므로 지루하다.
말이 없이 다들 피곤한 듯이 서둘러 내려와야 했으나 내려오는 속도도 그리 빠르진 않았다.
다행히 4시가 조금 넘어서 삼가리 야영장에 도착했으나
풍기로 가는 버스는 이미 4시 전에 출발하였으니...
이날은 그나저나 운이 없는 날이었다.
4시 버스를 타야 풍기 가서 부석사를 갈 수 있었으나 내가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버스를 놓쳤고
결국 부석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잠시 쉬다가 택시를 타고 풍기로 간 다음 풍기서 영주행 버스를 탔다.
미리 집에다 전화를 해서 어머니께 식사 3인분을 부탁했다.
그리고 따뜻한 방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신 김치찌게와 굴, 김, 김치 등을 맛나게 먹었다.
일행들은 지치고 힘들어서인지 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고....
조금 쉰 다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6시 45분 발 동서울행 버스티켓을 끊었다.
이미 어두워진 상태에서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모두 피곤한 듯 재킷을 끌어올리고 눈을 붙였다.
나역시 피곤에 지쳐 눈을 붙였으나...
위성방송에서 8시에 하는 '부모님 전상서'가 시작하는 시간에 눈을 떠 드라마를 끝까지 보았다.
버스는 9시가 조금 넘어서 동서울에 도착했고...
일행들과 함께 전철에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은 전철 자리에 앉아서까지 졸고 있었고...
잠시 깬 그들에게 신촌에서 인사를 하고 신촌에 내렸다.
신촌에서 동생과 동생 여친을 만나 나머지 짐을 건네주고
소주한잔 걸친 다음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온 시간은 새벽 1시 반이 넘은 시각.
몸과 마음이 다 지친 상태에서.... 이것 저것 살펴보다가...
나역시 도저히 졸음을 참지 못하고 3시가 채 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난 눈보라를 헤치고 소백산 능선을 타고 있었을까...
어렵사리 마친 산행....
사람들을 이끌고 내가 주선한 산행이었지만...
제대로 일행들을 이끌지 못하고 힘들게 하고 시간도 맞추지 못하게 했다.
일행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나에게도 미안하다.
산에서 남들을 이끈다는 것이...
다 같이 보조를 맞추어 산행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왜 잊어버리고 있었는지...
소백산아....
너는 설날때 다시한번 보자꾸나...
이로써.... 2005년 1월의 주말 이야기를 마친다....
휴우..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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