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결혼식.

2004. 11. 22. 12:20
또다시 찾아온 결혼식.
회사냐 후배냐를 고민하다가.... 후배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후배 결혼식에는 H가 온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뜨고도, 컴터 앞에 앉아서 결혼식장을 확인하면서도,
욕실에서 씻으면서도, 옷을 입으면서도 고민고민이었다.
H가 분명 올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한쪽 구석에 자그마한 앨범사진을 꺼내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우산을 든 H의 모습이 보인다.
일부러 보지 않기 위해 벽 구석에 넣어두고 휴지로 맨날 가리고 있었는데...
오늘 한번 제대로 다시 본다.
구석에서 콰악 솟아오르는 것이 있다.
애써 무시한 채 집을 나선다.
시간이 애매하다.
어차피 제시간에 가긴 글렀다.
양복도 차려입지 않았다.
후배의 결혼식이다.
사진 찍기도 뭣하다.
그저 돈을 내고 왔다 갔다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한시간 반에 걸쳐 인천서 사당까지 겨우 도착했다.
삼일째 연속 서울 나들이다.
지하철이 지겹다.
30분 약간 넘겨 도착을 했더니 이미 식은 끝났고 2층에서 후배들이 식사를 위해 계단을 내려온다.
왜 이제 왔냐고 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그 가운데 H의 얼굴이 보인다.
"왔어요~"하면서 인사하는 것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스쳐지나 계단을 올라간다.
식이 끝났기에 얼굴을 보진 못하고 축의금을 낸 후 식권을 받아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부페 자리에서 많은 후배들을 만났다.
결혼 한 후배, 곧 결혼 할 후배, 논문 쓰는 후배, 취직한 후배....
그렇게 친했던 후배들을 만나 한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두세 테이블에 나눠서 앉은 상태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앞쪽 테이블에 H는 돌아앉아있다.
식사를 하고 나와 식장 밖에서 서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눌 때 까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H와는 얼굴을 두어번 정도 마주쳤다.
그나마 서로 외면하고 있다.
나도 외면하고 있다.
말은 꺼내지 않는다.
다른 후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H 생각 뿐이다.
계속 여기 있다간 안되겠다.
어차피 왔다 얼굴만 보고 가려고 일부러 3시에 용산에서 다른 친구랑 약속을 했으니...
빨리 사라져야 한다.
다행히도 신랑 신부 얼굴을 보았다.
신랑 얼굴이 어쩌다가 저렇게 퉁퉁 부어버렸냐...
신부는 정말 예쁘다.
애들에게 인사를 할 때까지도 H와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게 낫다.
식장에서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마음속과 머리속은 온통 섞여있다.
부페에서 먹은 음식들은 윗속에서 걸음과 함께 율동을 치고 있고
머릿 속에서는 이어폰에서 들려나오는 Turn the Page 소리에 맞춰 쿵쿵 울리고 있다.
겨우 겨우.... 전철을 타고 자리에 앉으니 그나마 안정이 되어간다.
그리고....H의 얼굴과 옷차림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내려는 내안의 다른 나와 한참을 싸운다.
용산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 뿐만 아니라 온몸이 다 혼란스럽다.
발걸음조차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p.s 일부러... 양복을 입고 가지 않았다.
등산화에 5년 전에 학교에서 배포한 옷, 청바지, 그리고 등산가방.
다들 등산하고 오는 길이냐고 한다.
후배 결혼식에 이제 사진 찍을 일은 없을테니....
그래도... 너무했지 싶다.
하지만 어쩌냐.... 그저께 술 취한 사람 챙기느라 옷이 엉망이 되었는걸....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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