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소백산행
色+樂+狂2007. 2. 19. 22:05
0. 명절(추석, 그리고 설날)은 일년 중 집(시골)에 내려가는 얼마 되지 않는 날들 중 하나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게, 명절만 되면 시골에 내려가 집에 들어가기 전 산을 타는 버릇이 생겼다. 그 시간차는 6~8시간이 된다.
1. 이번 명절도 변함 없다. 16일, 아침 7시에 천안을 출발하여 풍기에 도착하니 딱 두시간이 지났다. 다만 20여분 전에만 도착했어도 좀 더 빠른 버스를 타고 산을 탈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일년에 두세번, 혹은 네번까지 소백산을 탔어도 풍기에서 몇시에 차가 있는줄 모르는 내가 오히려 바보가 아닌가.
다행히도 차를 구석(풍기역으로 들어서면 차를 세워둘 곳이 두군데 있다만.. 나는 아직 한 곳 밖에 모른다. 그곳은 바로 풍기 인삼시장 건물 근처 주차장이다)에 세워두고 시간표를 확인한다. 어쩔 수 없이 시간상으로 오늘도 희방사를 통해 연화봉으로 오르는 수 밖에 없구나. 그럼 적어도 9시 45분까지는 기다려야 하고, 최소한 산을 타도 10시부터 탈 수 있구나...
<풍기역 버스 시간표>
희방사는 연화봉코스, 삼가리는 비로봉 코스, 전구리가 아마도 국망봉 코스이지 싶다..
아침식사와 산행에 있어서 필수코스인 맥주.
맥주는 여러 코스에서 확인했다시피.. 물을 훠얼씬 적게 마시는 계기가 된다.
서부2리 마을회관 건너편으로 머얼리 보이는 곳이 아마도.. 국망봉이지 싶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가게 아주머니가 등산하냐고 묻더니 홍삼차를 한잔 주신다.
맥주와 홍삼차...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거의 정확히 10시부터 소백산 희방사 초입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이 코스는 여러번 왔던 코스고 매번 소개했던 코스다. 바뀐 것이 있다면 1월 1일부터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이쪽 코스는 중간에 희방사때문에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진짜 싫다.
그래도 어쩌랴... 내 고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거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듯...
기억에 남는 소백산행은 아마도 92년인가 91년이다.
그때는 아래 사진의 왼쪽과 같은 코스로 산을 올랐다.
지금은 오른쪽과 같은 코스다.
산은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사람들은 산을 저렇게 보호할 줄도 알아야 한다.
매번 바라보는 희방폭포...
이제는 겨울의 희방폭포가 아닌 봄의 폭포다.
2. 몇번 오다가 생각나길... 흐린 날에는 볼 수 없었던 능선상의 구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눈 높이에 KT 중계국도 보이고 눈 앞에 천문대도 보인다. 이 말 뜻은 지금 거닐고 있는 능선 자체가 그정도 높이란 뜻이다. 깔딱고개를 넘어 연화봉으로 넘어가는 길은 그렇다. 눈에 보이는 천문대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은 한시간. 넉넉하게 이런저런 구경하면서 오를 수 있는 곳이고, 이정도 높이라면 산 위에서 볼 수 있는 맛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3. 할 말이 없다. 아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연화봉. 제1연화봉과 제2연화봉(중계소)를 잇는 천문대를 포함하는 높이의 봉우리. 그러나 죽령에서 넘어오던 희방사에서 오르던 이 봉우리를 지나게 된다. 솔직히 제1연화봉이나 제2연화봉, 그리고 비로봉에서 바라보는 소백산의 능선은 한계가 있다. 가장 아름다운 능선의 모습은 바로 이 연화봉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이 장소, 이 연화봉은 소백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최고의 풍경과 시야를 제공하는 곳이다.
(보통 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해가 떠 있기 마련.... 비로봉에서 바라보는 소백산의 능선은 바로 그 동쪽을 바라보게 된다. 연화봉에서 바라보는 능선은 서쪽방향이라, 날씨가 좋은 날에는 죽령쪽을 제외하고는 사방팔방의 멋진 광경을 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작년 3월, 눈이 쌓인 소백산 능선을 거닐던 기억은 오늘 하루 다시 반복된다. 나는 다시금 그 능선위의 눈 위를 걷고 있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비로봉을 마주하고 잠시간의 휴식을 취해본다.
04. 음성에서 오신 한 분은 이제서야 산행에 맛을 들이셨단다. 한달정도 산을 지속적으로 타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경기 5악을 섭렵할 정도라고... 소백산 능선과 천동에서 올라오는 길과의 갈림길에서 그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산에 대한 경험이 이제 한달 되신 분인데 그 열정 하나는 굉장하시다. 아마도 6개월이 지나면 나보다 더 많은 산을 더 즐겁게 맞이할 수 있으실 듯. 다만 걱정인 것은 남들이 틀에 고정시켜놓은 산행만은 버리시길....
산은, 산행은 남들과 같이 가더라도 혼자서 스스로 고생하고 느껴가는 것이기에....
지금처럼 혼자 타시더라도 될 수 있으면 남들에게 산타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그 이후에 스스로 혼자 산타는 법을 배우시길...
05. 부천사시는 분은 아산에서 국도길로 어렵사리 여기까지 오셨다.
복잡한 국도길로 오시다가 충주에서 길을 잘못드셔서 예상보다 1시간 늦게 산행을 하셨는데 이분은 전문가다. 다만 이곳 소백산이 초행이라는 것 뿐.
꽤 긴 코스를 예상하시다가 억지로 억지로 해서 희방사에서 국망봉을 거쳐 초암사로 내려가시겠단다. 생각보다 긴 코스가 되겠지만 여러번의 겨울산행을 거쳐서 훈련을 했기에 스스로 가능하시단다.
솔직히.... 나도 저런 생각을 했으나... 이번 겨울은 넘어가고 다음을 기대해보자....
능선을 탈 때 마다 찍는 고목.
어느순간 날개, 천사의 날개가 하늘에 펼쳐진다.
눈이 소복히 쌓인 고목과 그렇지 않은 고목과의 차이는..
별로 없다.
컵라면, 커피, 김밥, 그리고 팩소주
05. 몇몇 분들이 비로봉을 오르신 후 예전의 그 칼바람이 휘날리던 비로봉은 어디갔냐고 하셨을 때만 하더라도 '그건 비겁한 변명입니다~'라고 외쳤던 내가 결국은 비로봉의 바람한점 없는 상태를 겪고 나서야 그분들의 상태를 이해하게 된다.
(나중에 내려와서 동내사람들에게 물어보니 2~3일전 만 하더라도 장난 아니었다고 하시두먼..)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비로봉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모습에 행복하지 않을쏘냐?
산 아래에서도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그 모습을 본다.
그러나 산 위에서 바라보는 일과 모습들은 그 차원이 틀리다.
우리는 숲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가?
지금의 모습에 만족한다면 산을 타지 않아도 상관 없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변화를 필요로 할 때에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그 삶, 그 현장의 숲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쉽지 않기 때문에 헉헉 대서라도 산을 오르는 이유지 싶다.
비로봉 오르는 마지막 계단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능선길...
1,440미터에서 바라보는 세상...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챙기는 목 돌아가 아픈 삼마...
이런 경험도 어쩌랴...
(셀프입니다.)
아마도 이 날 산행은 마지막 겨울 산행이 아니라 2007년의 첫 봄 산행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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