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 나다!"

약간 낮은 여자 목소리...
액정에도 이름이 나왔지만 목소리 듣고 더욱 확신이 든...

"어라? 너 왠일이야???"

"응~"

"그리고 나다? 가 뭐냐? "

" 그럼 뭐라고 그래??"

" 오빠, 나야~ 그러던지...."


아주 밝고 빠른 목소리로 전화를 건 이녀석은...

나에게 첨으로 사랑을 준 녀석이다.

대학교 2학년때... 동아리 후배로 들어온 이녀석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나도 고2때까지는 교회를 다녔으니 교회다니는 애들의 성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민중가요를 부르는 동아리에 들었다니...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을지 예상되었다.

그당시, 내가 속한 다른 만화동아리에서도 같은 1년 후배가 같은 문제로 고민에 쌓여있었다.

그들의 문제는 다들... 민중가요 동아리니 만화동아리는 데모를 많이 하고 학교에 문제동아리로 찍히고..
그러다가 혹시나 나쁜 길로 빠져들지 않을까 라는 부모님의 걱정때문이었다.

지금은 만화동아리가 그럴 일이 없었겠으나
예전에는... 내 선배들은 만화로, 그림으로 대학의 지식을 표현하고 저항을 표현했었다.
민중가요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하여튼,
민중가요에 든 후배녀석은 많은 고민을 했었고..
그 녀석이 울면서까지 고민하는 것을 보고 위로도 많이 해주었다.
원래 성격이 밝고 쾌활하고 착한 녀석이라 다행히 금방 적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시골 촌구석에서 서울에 올라왔다.
시골에서는 중고등학교를 남학교에만 다니고
서울 대학이란 곳에 와서 사방팔방에 여자들과 함께 다니니 이 얼마나 좋지 않을소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리고 여자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러길 1년...

새로운 후배들을 맞이하면서 각오한 것이 있었다.
후배들을 여자로 보지 않으리라~
아직까지 1학년때의 상처와 감정, 그리고 그 원인 제공자들이 버젓이 남아있는데...
다른 여자들에게도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나는 나름대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도 벗어나는 훌륭한 방법중의 하나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당시의 나는 그러질 못했다.
아무리 이쁘고 착한 여자더라도...
그당시에 나는 무언가에 씌였었나보다.
아픔으로부터,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림과 노래에, 그리고 술에 얼마나 빠져있었던가...

그녀석은 그런 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동아리방에서... 게다가 민중가요라는 동아리 안에서 선배라는 호칭보다는 ~형 이라는 호칭이 많았다.
남자던 여자던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고...
거기에 익숙하지 못한 학생들은 선배~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녀석은 아마 내 기억에 동아리방에서 처음으로 오빠~ 언니~ 라고 불렀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다 언니 오빠들이 아니던가...
그렇게 씩씩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과 좋은 키보드 실력과 ,좋은 노래솜씨를 보여주었다.
밥도 씩씩하게 싹싹 비우고...
비록 술은 많이 못마시지만 학교에서 밤새는 것을 좋아하고...
그당시의 1학년에게 못할 것이 무었이었을까...
나 역시 밤새 술먹고 동아리방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수돗가에서 씻고
동아리방에서 기타를 튕기며 담배를 피고 있을 무렵
동아리 방문을 열고 들어와 궁시렁대면서 밥먹자고 한 적도 많았다.

나는 남자다.
남자가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나는 왜그리 그때 억눌렀는가...
이녀석은 후배다... 이녀석은 후배다...
그렇게 최면과 암시를 스스로에게 걸고 있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갈 즈음...
휴학을 한 것을 집에 들키고 아버지께서 올라와 결국 잡혀서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내려왔다.
군대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시골에서 1달동안 짜장면 배달을 하면서 학교를... 동아리를 그리워 하던 중...
영장이 나왔다.
일주일 남았다.
시골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5일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먼저간 친구들을 제외하고 남은 친구들과 한번...
만화동아리에서 한번...
민중가요동아리에서 한번...
그리고 어딘지 모를 어디선가 한번....

그렇게 술을 마시다가 혼자 휭~ 춘천으로 향했다.
마지막에 그녀석과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른다.
나 자신의 고민과, 괴로움과,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지쳐있었으니까...

가끔 편지가 군대로 왔다.
나도 답장을 가끔 썼다.

짬밥이 생기고 난 후에는 그녀석 집에도 전화를 하고 한시간동안 밤에 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역 후...
그녀석은 더이상 동아리 생활을 하지 않았고...
1년은 휴학을 했다.
필리핀에서 교회공부와 영어공부를 하고 돌아왔고...
1년이 더 지났다.
PC통신을 알려달라고 한다.
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것저것을 좀 알려주고...
나는 나름대로 바뻐서 공부에 매달려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학년을 학생회에 들어가 발버둥 치려고 할 무렵...

그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이미 졸업하고 취직을 한 후였는데... 학교에 볼일있어 오는데 밥사달라는 거다.
이미 PC통신을 통하여 남자를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는 뭐, 후배녀석이 오랜만에 학교 오니까 밥먹으려고 마중을 나갔다.

학교 앞 식당에서 밥 하나를 시켜서 둘이 알콩달콩 먹고 있는데...

" 오빠... 나 변한 거 없어?"

" 많이 변했네... 취직하더니 더 이뻐지고... 살도 좀 찐거같고..."

" 오빤 여자친구 안사귀냐?"

" 나? 글쎄다... 나같은 넘을 좋아할 여자가 있겠냐?"

" 왜~? 나 오빠 좋아했었는데?"

" 오~ 그래? 나 생각보다 인기 있는거냐?? 흘흘"

그때까지는 농담인줄 알았다.
그녀석이 숟가락을 놓고 정색을 하고 말하기 전까지는....

" 오빠 몰랐단 말야? 나 오빠 5년동안 짝사랑했었는데...??"

" 엥?? 진짜??"

.
.
.

1학년때부터... 그리고 얼마전까지...
5년이랬다.
5년...

아..
그러나 어쩌랴...
이미 녀석에게는 남자친구가 있고...
나를 짝사랑하던 마음은 없어져버렸는데....

내가 가슴이 철렁하고 아팠던 것은...

그나마 평생 있을까 말까 하는 사랑을 받았음에도 전혀 눈치를 못챘던 자신에 대한 책망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녀석에게 고생시킨 것 때문이었을까....

그랬을까...

아무말 없이 밥을 남기고 전철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얼굴은 ?F빛이 된 채...

아무 의미없는 농담이나 하면서...
전철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아니... 중간까지 바래다주었나???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











그날... 한동안 그녀석과의 이별을 예감했다.












그리고 몇년 뒤...
어쩌다가 다시 연락되었고...
어쩌다가 다시 만났고...
어쩌다가 다시 헤어졌다...











그리고 어쩌다가 1년만에 다시 연락이 되었다.
가끔...아주 가끔...

이제는 그녀석에게 연락이 오면 반갑다.
목소리는 여전하고...
예전보다 더 커진 듯 하다.

남자친구도 그 사이 세번이나 바뀐듯 하고...
직장도 몇번이나 바꾼 듯 하다.


그래도 여전히 교회를 나가면서 잘 살고 있는 듯 하다.

1년전, 그녀석이 만든 홈페이지에 가서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녀석의 사진을 보았다.
여전히 귀엽다...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녀석은 그럴 녀석이다.

언제나 남에게 사랑을 받을 녀석이다.

나에겐 마음 한 구석... 저 구석에 그녀석에 대한 추억의 씨앗이 아직 남아있다.
이젠 아무리 물을 주어도 결코 싹틔우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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