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겨울이야기.

2004. 12. 3. 09:56
1. 어릴적... 아주 어릴적은 아니고..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 다닐 적 이야기...
말썽꾸러기 개구쟁이 이야기.
한겨울 꽁꽁 얼어있는 겨울의 논 한가운데에
거위 세마리가 앉아 있네.
아이는 거위의 아름다움에 눈을 빼앗겨 한참을 바라보다 거위에게 다가가네..
그러나 논두렁 끝의 얼음을 밟는 순간 얼음이 깨지고
아이는 무릎높이나 되는 차가운 물에 빠져버리네...
거위는 놀라 도망가고 아이는 놀라 울고...
그렇게 겨울마다의 개구쟁이 이야기는 시작되네...
2. 평소에는 물이 별로 없지만 비만 내리면 200미터가 넘는 강이 되어버리는 '서천'
오래전 많은 비에 범람한 적이 있은 후 강 둑 높이는 더 높아졌더랬지.
여름엔 개울가서 물장구치고 고기잡던 서천 둑방은
겨울이면 바싹 마른 잡초들과 갈대들로, 그리고 나무들로 휑했더랬지.
겨울은 논두렁이던 둑방이던 새까만 이빨들이 가득 했더랬지.
불을 놔야 했으니까.
어느 한겨울.
친구와 둘이서 둑방에 불을 놨더랬지.
불과 함께 하얀 연기는 마른 하늘 위로 날아가고
우리는 불이 꺼질새라 이쪽 불을 저쪽에다 놓고 한참을 놀았더랬지.
그러다 갑작스럽게 소백산 아래로 세찬 바람이 불어와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높이고
우리는 무서워 도망치고 말았지.
그 불은 둑방 근처에 있는 산 초입을 태우고서야 꺼졌더랬지.
이 일은 시골마을의 큰 화를 불러 일으켰을 법한 개구장이들의 가장 큰 사건이었지.
3. 큰 산은 아닌 작은 동산이 있다.
서천을 따라 내려와 사람들이 폭포라고 부르는 곳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동산이다.
그 비탈길은 자전거를 타고 내려와도 무서울 정도로 꽤나 가파르다.
게다가 비탈길 마지막 5미터 정도는 울퉁불퉁한 돌들로 깔려있다.
비가 많이 올 경우 무너지지 말라고 토사 대신 돌로 깔아놓은 것이다.
한겨울, 눈이 많이 내렸던 날.
아이 하나가 동네 친구의 집앞에서 다른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그렇게 한시간을 돌아다니면 어느새 아이들의 수는 예닐곱으로 늘어나있다.
각자의 손에는 비닐 포대, 비료 포대, 쌀 포대가 쥐어져있고
아이들은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소리를 치며 작은 동산으로 향한다.
눈썰매는 역시 이런 곳에서 타야 제맛이다.
갑자기 한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를 보고 달려왔으나 금새 다들 웃고만다.
포대를 깔고 내려오는 도중, 마지막 부분의 뾰족 튀어나온 돌에 그만
포대가 찢어지고 그 아이의 똥꼬에 걸렸던 것이다.
그 아이는 눈에 눈물이 고여 엉덩이를 부여잡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아이들과 어울려 순식간에 내려온 비탈길을 씩씩대고 올라간다.
개구장이들.
4. 6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겨울이 끝나가던 즈음.
이미 중학교는 정해지고 얼마 남지 않은 봄방학.
아이의 아버지가 리비아로 2년동안 돈을 벌기위해 떠나시는 날.
아이는 더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5. 고등학교 2학년에 시작한 중국집.
여름방학때 보충수업을 미루고 자전거를 타면서 배달일을 도왔었다.
그리고 학기중에는 저녁때 보충수업을 가지 않고 미루고...
그렇게 겨울이 되어 어느날 눈이 많이 내렸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상태라 아침에 자전거를 끌고 학교에 가야 했다.
중국집을 시작하면서 나의 도시락 반찬은 다른 것이 없었다.
따로 반찬통에 짜장만 담아가면 인기는 최고였고,
나는 그덕에 다른 아이들의 반찬을 골고루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부모님이 주무시는 동안 밥통에서 밥을 싸고 주방에 들어가 짜장을 담는다.
그것이 매일매일의 일과였다.
그러다 겨울의 어느날, 눈이 많이 내린 날.
가방과 옷을 다 챙겨 입고 자전거를 밖에 꺼내놓고 주방에 들어갔다.
밥을 싸고 반찬통에 짜장을 듬뿍 넣고 새지 않게 하기 위해 랩을 두어번 쌌다.
그리고 칼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랩을 자르는데...
이날은 잘못하여 새끼손가락을 날카롭게 베이고 말았다.
그것도 2센티미터 정도로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깊게.
순간 놀라 화장지를 찾아 돌돌말고 부모님 깨실까봐 얼른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그리고 약국을 찾아 눈 위를 조심조심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어느새 왼쪽 새끼손가락에서 피가 엄청 솟아올라 하얀 눈위로 빨갛게 자국을 남겼다.
약국에서 탈지면과 소독약, 밴드를 사고 주머니에 집어넣고 휴지를 더 꺼내서 손가락에 둘렀다.
그날따라 눈길에다 손에다 피에다... 학교가는 길이 그렇게 더딜수가 없었다.
높은 언덕을 두개 넘어 학교에 도달할때 까지 손가락에서 나는 피는 계속 하얀 눈위에 뿌려졌다.
아침 보충수업이 시작하기 전...
구석에서 손가락에 붙어 얼어있는피를 걷어내고 휴지를 걷어내고
아직도 피가 흐르는 상처에 소독약을 뿌리고 빨간약을 바르고 탈지면을 대고 붕대를 감고 밴드를 붙였다.
새끼손가락이 두툼해졌다.
음.... 5번은 추억이 아니다. 별거 아니다.... 5번 제외.
1~4번까지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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