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 운동 - 잊지 말기위해...
狂2010. 5. 18. 13:14
-3169440]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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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 출처... : http://www.518.org/(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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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기에.... 다시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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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배경
1961
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집착하였고 솟구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저곡가 저임금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으며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압살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우선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으로 그칠 줄 모르고 전개되었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부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온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일당은 오히려 민주화 과정의 과도기를 틈타 자신들의 집권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다음, 당시 분출되고 있던 전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을 제거해야 했다. 그 제물이 광주였다.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곳이며 야당의 정적 중에서 가장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있던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 전라도 광주였던 것이다. 전라도 광주는 70년대 박정희 개발 독재 때부터 희생양이었다. 철저히 소외되었고 경제에서는 낙후되었으며 우리 민족을 다시 동서로 가르는 지역감정의 볼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장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며 투쟁해 온 민주투사의 고장이었다.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학살만행에 맞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시민전체가 일심동체로 저항하였던 것은 정신적 측면에서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피의 진압으로 5·18민중항쟁은 끝났지만 그 후 청년학생을 비롯한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일당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
항쟁의 의의
※ 중복지급자 694명을 제외할 경우 실제 인정인원수는 4,312명임
※ ( )은 90년에 상이로 인정받고 93년에 기타(수형·연행훈방)로 인정받은 자
※( )은 90,93,98년에 상이 또는 기타로 인정받고 2000년에 기타 또는 상이로 인정받은자
※서울(북부, 남부, 수원, 인천, 의정부, 춘천, 강릉) / 대전(홍성, 충주, 청주) / 부산(울산, 마산, 진주, 제주) / 광주(익산, 전주, 목포, 순천)
5·18민중항쟁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자발적인 민중운동의 소산이다. 조선말기의 갑오농민혁명, 일제 강점기의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등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해방투쟁,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학생혁명 등의 정신을 이어받은 밑으로부터 개혁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항쟁이었던 것이다. 5·18민중항쟁은 깨어있는 민중이 민주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적인 통일, 그리고 평등 세상을 향한 사회진보 운동의 일대 전환점으로 자리잡았다. 5·18민중항쟁은 당시에는 피의 진압으로 패배하였지만 이후 전개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유신체제를 계승한 제5공화국 정권의 부도덕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증거가 되었고, 나아가서는 불법적인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정치군부 세력을 심판하였으며 마침내는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맞선 민중의 자위적 무장항쟁이 국민저항권의 적극적 행사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5·18민중항쟁 시기의 수준 높은 나눔과 자치, 연대의 공동체 정신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훌륭한 모범이자 압제에 저항하는 세계 진보적인 사람들의 가슴에 가장 경이로운 민중항쟁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5·18민중항쟁은 저항과 단죄를 넘어 나눔과 자치, 연대의 공동체 실현을 위해 우리 모두가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인류 역사의 숭고한 가치로 승화시켜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유산이다. |
5.18 민중항쟁 상황일지..
역사의 사건 속으로...
1979년
· 10월 4일 : 국회,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 10월 16일 : 부산민주항쟁 부산대, 동아대생의 '정권타도' 교내시위 및 시민 합세한 가두시위 전개
· 10월 18일 : 마산민주항쟁 학생시위와 관련하여 부산 비상계엄령 발표
· 10월 26일 : 박정희 대통령 피살, 전국 비상계엄령 선포
· 11월 19일 : 전국 대학 휴교 해제
· 12월 6일 : 10대 대통령에 최규하 선출, 긴급조치 9호 해제
· 12월 12일 : 12·12군사반란 발생, 신군부는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
1980년
· 2월 29일 : 윤보선, 김대중 등 정치인 687명에 대한 복권 조치 단행
· 3월 13일 : 대통령직속 자문기관으로 '헌법개정심의위원회' 발족
· 4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을 중앙정보부장서리에 임명
· 4월 30일 : 계엄사령관 지휘관회의, 노사분규, 학원소요 등 폭력 엄단키로 결의
· 5월 6일 : 학원자율화 입영훈련철폐 요구하며 대학가 가두시위 전개
· 5월 14일 : 광주지역 대학생 등 1만여명 가두진출, 도청광장에서 '민주화 성회' 진행
· 5월 15일 : 서울역 광장에서 학생, 시민 20여만명이 운집하여 계엄철폐, 민주화 요구
· 5월 17일 : 비상계엄 전국 확대
· 5월 18일 : 5·18민중항쟁 발발
· 10월 4일 : 국회,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 10월 16일 : 부산민주항쟁 부산대, 동아대생의 '정권타도' 교내시위 및 시민 합세한 가두시위 전개
· 10월 18일 : 마산민주항쟁 학생시위와 관련하여 부산 비상계엄령 발표
· 10월 26일 : 박정희 대통령 피살, 전국 비상계엄령 선포
· 11월 19일 : 전국 대학 휴교 해제
· 12월 6일 : 10대 대통령에 최규하 선출, 긴급조치 9호 해제
· 12월 12일 : 12·12군사반란 발생, 신군부는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
1980년
· 2월 29일 : 윤보선, 김대중 등 정치인 687명에 대한 복권 조치 단행
· 3월 13일 : 대통령직속 자문기관으로 '헌법개정심의위원회' 발족
· 4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을 중앙정보부장서리에 임명
· 4월 30일 : 계엄사령관 지휘관회의, 노사분규, 학원소요 등 폭력 엄단키로 결의
· 5월 6일 : 학원자율화 입영훈련철폐 요구하며 대학가 가두시위 전개
· 5월 14일 : 광주지역 대학생 등 1만여명 가두진출, 도청광장에서 '민주화 성회' 진행
· 5월 15일 : 서울역 광장에서 학생, 시민 20여만명이 운집하여 계엄철폐, 민주화 요구
· 5월 17일 : 비상계엄 전국 확대
· 5월 18일 : 5·18민중항쟁 발발
1980년 5·18 이후
· 5월 29일 : 5·18사망자 129구의 시신을 망월동 시립묘지 3묘원에 안장
· 5월 30일 : 서강대생 김의기 '학살정권 타도'를 외치며 투신
· 6월 9일 : '광주시민항쟁의 넋을 위로하며'라는 유서를 남기고 노동자 김종태 분신
· 12월 9일 : 광주 미문화원 방화
1981년
· 3월 3일 : 전두환 12대 대통령 취임
· 5월 18일 : 5·18 1주기 추모식 거행,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
· 5월 27일 : 서울대 침묵시위, 김태훈 투신 사망
1982년
· 3월 18일 : 부산 미문화원 방화
· 5월 18일 : 경찰의 원천봉쇄로 5·18 2주기 추모식 무산, 유족 30여명만이 위령제 거행
·10월 12일 :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5·18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단식투쟁 중 옥사
1983년
· 5월 18일 : 유족, 부상자의 격리조치로 5·18 3주기 추모식 무산, 묘지이장 회유정책으로 유족 일부 이탈
· 10월 9일 : 미얀마 랭군사건 발생
· 11월 12일 : 미국대통령 레이건 방한, 광주학살 배후조정 등 내정간섭 중지요구 반미시위
1984년
· 5월 18일 : 3천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5·18 4주기 추모식 거행
· 8월 30일 : 경찰의 명동성당 난입
· 11월 18일 : 3개 대학생들 민정당사 점거 시위
1985년
· 2월 8일 : 김대중 귀국
· 2월 12일 :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 승리
· 5월 18일 : 5·18 5주기 추모식에 야당의원, 재야인사, 종교인 등 500여명 참석
· 5월 23일 :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 8월 15일 : 노동자 홍기일 금남로에서 분신
· 12월 2일 : 광주 미문화원 점거 농성
· 5월 29일 : 5·18사망자 129구의 시신을 망월동 시립묘지 3묘원에 안장
· 5월 30일 : 서강대생 김의기 '학살정권 타도'를 외치며 투신
· 6월 9일 : '광주시민항쟁의 넋을 위로하며'라는 유서를 남기고 노동자 김종태 분신
· 12월 9일 : 광주 미문화원 방화
1981년
· 3월 3일 : 전두환 12대 대통령 취임
· 5월 18일 : 5·18 1주기 추모식 거행,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
· 5월 27일 : 서울대 침묵시위, 김태훈 투신 사망
1982년
· 3월 18일 : 부산 미문화원 방화
· 5월 18일 : 경찰의 원천봉쇄로 5·18 2주기 추모식 무산, 유족 30여명만이 위령제 거행
·10월 12일 :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5·18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단식투쟁 중 옥사
1983년
· 5월 18일 : 유족, 부상자의 격리조치로 5·18 3주기 추모식 무산, 묘지이장 회유정책으로 유족 일부 이탈
· 10월 9일 : 미얀마 랭군사건 발생
· 11월 12일 : 미국대통령 레이건 방한, 광주학살 배후조정 등 내정간섭 중지요구 반미시위
1984년
· 5월 18일 : 3천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5·18 4주기 추모식 거행
· 8월 30일 : 경찰의 명동성당 난입
· 11월 18일 : 3개 대학생들 민정당사 점거 시위
1985년
· 2월 8일 : 김대중 귀국
· 2월 12일 :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 승리
· 5월 18일 : 5·18 5주기 추모식에 야당의원, 재야인사, 종교인 등 500여명 참석
· 5월 23일 :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 8월 15일 : 노동자 홍기일 금남로에서 분신
· 12월 2일 : 광주 미문화원 점거 농성
1986년
· 4월 28일 : 서울대생 이재호, 김세진 "반전 반핵 양키고홈" 외치며 분신
· 5월 18일 : 시민, 학생 천여명 참석한 추모제 거행
· 10월 28일 : 건대사건 발생
1987년
· 1월 16일 :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발표
· 3월 6일 : 호남대 졸업생 표정두 "미국무장관 방한 반대"하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분신
· 5월 18일 : 추모식, 위령제, 기념예배 등에 수십만명의 시민 참여
· 6월 10일 : 6월항쟁 발생,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광주시민 30만명 시위
· 7월 9일 : 연세대생 이한열 장례식 거행
1988년
· 4월 : 총선, 6공화국 민주화합추진위원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성격 규정
· 5월 18일∼27일 : 준합법적인 5·18행사 진행
· 11월 : 국회 광주특별위원회 및 청문회 가동
1989년
· 5월 18일∼27일 : 조선대생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 투쟁 및 5·18 9주기 추모식 거행
1990년
· 5월 18일∼27일 : 전야제에서 부활제까지 41개 단체 연합한 5월 행사 진행
· 4월 28일 : 서울대생 이재호, 김세진 "반전 반핵 양키고홈" 외치며 분신
· 5월 18일 : 시민, 학생 천여명 참석한 추모제 거행
· 10월 28일 : 건대사건 발생
1987년
· 1월 16일 :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발표
· 3월 6일 : 호남대 졸업생 표정두 "미국무장관 방한 반대"하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분신
· 5월 18일 : 추모식, 위령제, 기념예배 등에 수십만명의 시민 참여
· 6월 10일 : 6월항쟁 발생,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광주시민 30만명 시위
· 7월 9일 : 연세대생 이한열 장례식 거행
1988년
· 4월 : 총선, 6공화국 민주화합추진위원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성격 규정
· 5월 18일∼27일 : 준합법적인 5·18행사 진행
· 11월 : 국회 광주특별위원회 및 청문회 가동
1989년
· 5월 18일∼27일 : 조선대생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 투쟁 및 5·18 9주기 추모식 거행
1990년
· 5월 18일∼27일 : 전야제에서 부활제까지 41개 단체 연합한 5월 행사 진행
1991년
· 4월 26일 : 명지대생 강경대 백골단에 의해 타살
· 5월 18일∼27일 : 정신계승결의대회에서 5월영령 부활제까지 다양한 5월 행사 진행
· 5월 26일 : 분신 자살한 전남대생 박승희 장례식에 학생, 시민 20여만명 참여
1992년
· 2월 25일 : 김영삼 제14대 대통령 취임
1993년
· 3월 18일 : 김영삼 대통령 망월동 참배 저지
· 5·18문제해결 5대 원칙(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집단배상, 명예회복, 기념사업) 확정
1994년
· 5·18학살책임자에 대한 고소 및 고발운동 전개
1995년
· 7월 : 5·18학살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구성
5·18유족과 부상자 등 150여명 명동성당 농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전두환, 이희성 등 7명을 국회위증죄로 고발
· 8월 : 5·18학살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전개
· 11월 : 노태우 전대통령 부정축재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
· 11월 : 24일 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제정을 민자당에 지시
· 12월 : 전두환 전대통령 12·12 및 5·18사건관련 혐의로 구속 수감
1996년
· 1월 23일 : 전두환 노태우 등 5·18학살책임자 8명 내란혐의로 기소
1997년
· 4월 17일 :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17년형 등 5·18학살책임자들 형벌 확정
· 4월 29일 : 정부 5·18민중항쟁 국가기념일 제정
· 5월 16일 : 5·18신묘역 준공식
· 5월 18일 : 정부주관 5·18 17주년 기념식
1999년
· 5월 : 5·18자유공원 조성(영창, 법정 이전)
2000년
· 5월 18일 : 정부주관 5·18민중항쟁 20주년 기념식(김대중대통령 참석)
2001년
· 5월 : 5·18기념문화관 건립
· 12월 21일 : 국회,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제정
2002년
· 7월 27일 :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 시행
국립5·18묘지로 승격
· 4월 26일 : 명지대생 강경대 백골단에 의해 타살
· 5월 18일∼27일 : 정신계승결의대회에서 5월영령 부활제까지 다양한 5월 행사 진행
· 5월 26일 : 분신 자살한 전남대생 박승희 장례식에 학생, 시민 20여만명 참여
1992년
· 2월 25일 : 김영삼 제14대 대통령 취임
1993년
· 3월 18일 : 김영삼 대통령 망월동 참배 저지
· 5·18문제해결 5대 원칙(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집단배상, 명예회복, 기념사업) 확정
1994년
· 5·18학살책임자에 대한 고소 및 고발운동 전개
1995년
· 7월 : 5·18학살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구성
5·18유족과 부상자 등 150여명 명동성당 농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전두환, 이희성 등 7명을 국회위증죄로 고발
· 8월 : 5·18학살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전개
· 11월 : 노태우 전대통령 부정축재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
· 11월 : 24일 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제정을 민자당에 지시
· 12월 : 전두환 전대통령 12·12 및 5·18사건관련 혐의로 구속 수감
1996년
· 1월 23일 : 전두환 노태우 등 5·18학살책임자 8명 내란혐의로 기소
1997년
· 4월 17일 :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17년형 등 5·18학살책임자들 형벌 확정
· 4월 29일 : 정부 5·18민중항쟁 국가기념일 제정
· 5월 16일 : 5·18신묘역 준공식
· 5월 18일 : 정부주관 5·18 17주년 기념식
1999년
· 5월 : 5·18자유공원 조성(영창, 법정 이전)
2000년
· 5월 18일 : 정부주관 5·18민중항쟁 20주년 기념식(김대중대통령 참석)
2001년
· 5월 : 5·18기념문화관 건립
· 12월 21일 : 국회,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제정
2002년
· 7월 27일 :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 시행
국립5·18묘지로 승격
]
전개과정
관련현황
구분 | 신청(명) | 취하(명) | 기각(명) | 인정(명) | 지급액(백만원) | 비고(중복인원) |
계 | 7,189 | 120 | 2,063 | 5,006 | 228,369 | (694) |
사망 | 218 | 14 | 50 | 154 | 17,042 | |
행불 | 363 | 16 | 277 | 70 | 9,048 | |
상이 | 5,088 | 47 | 1,620 | 3,193 | 172,388 | (22) |
기타 | 1,520 | 43 | 116 | 1,589 | 29,891 | (671) |
※ 중복지급자 694명을 제외할 경우 실제 인정인원수는 4,312명임
구 분
|
신청(명)
|
취하(명)
|
기각(명)
|
인정(명)
|
지급액(백만원)
|
비고(중복인원)
|
계
|
2,693
|
21
|
448
|
2,224
|
142,792
|
|
사망
|
190
|
12
|
24
|
154
|
17,042
|
|
행불
|
148
|
2
|
108
|
38
|
4,914
|
|
상이
|
2,290
|
4
|
315
|
1,971
|
120,332
|
|
기타
|
65
|
3
|
1
|
61
|
504
|
|
신청(명)
|
취하(명)
|
기각(명)
|
인정(명)
|
지급액(백만원)
|
비고(중복인원)
| |
계
|
2,791
|
83
|
865
|
1,843
|
39,226
|
(649) |
사망
|
15
|
2
|
13
|
-
|
-
|
|
행불
|
117
|
9
|
99
|
9
|
1,129
|
|
상이
|
1,483
|
36
|
682
|
765
|
28,410
|
|
기타 |
1,176
|
36
|
71
|
1,069
|
9,687
|
(649) |
※ ( )은 90년에 상이로 인정받고 93년에 기타(수형·연행훈방)로 인정받은 자
신청(명)
|
취하(명)
|
기각(명)
|
인정(명)
|
지급액(백만원)
|
비고(중복인원)
| |
계
|
837
|
9
|
358
|
470
|
28,047
|
(28)
|
사망
|
10
|
-
|
10
|
-
|
-
|
|
행불
|
54
|
2
|
35
|
17
|
2,208
|
|
상이
|
494
|
3
|
269
|
222
|
12,798
|
(12)
|
기타
|
279
|
4
|
44
|
231
|
13,041
|
(16)
|
신청(명)
|
취하(명)
|
기각(명)
|
인정(명)
|
지급액(백만원)
|
비고(중복인원)
| |
계
|
868
|
7
|
392
|
469
|
18,304
|
(17)
|
사망
|
3
|
-
|
3
|
-
|
-
|
|
행불
|
44
|
3
|
35
|
6
|
797
|
|
상이
|
821
|
4
|
354
|
235
|
10,848
|
(10)
|
기타
|
-
|
-
|
0
|
228
|
6,659
|
(7)
|
※( )은 90,93,98년에 상이 또는 기타로 인정받고 2000년에 기타 또는 상이로 인정받은자
계
|
서울
|
대전
|
대구
|
부산
|
광주
| |
사망자
|
207
|
23
|
2
|
-
|
3
|
179
|
부상자
|
2,392
|
453
|
44
|
38
|
62
|
1,795
|
기타희생
|
987
|
316
|
26
|
30
|
33
|
582
|
小 計
|
3,586
|
792
|
72
|
68
|
98
|
2,556
|
※서울(북부, 남부, 수원, 인천, 의정부, 춘천, 강릉) / 대전(홍성, 충주, 청주) / 부산(울산, 마산, 진주, 제주) / 광주(익산, 전주, 목포, 순천)
계
|
본인
|
유족
| |
사망·행불자
|
207
|
-
|
207
|
부상자
|
2,392
|
2,252
|
140
|
기타희생자
|
987
|
966
|
21
|
계
|
3,586
|
3,218
|
368
|
1級
|
2級
|
3級
|
4級
|
5級
|
6級
|
7級
| |
2,252
|
33
|
13
|
19
|
18
|
43
|
18
|
67
|
8級
|
9級
|
10級
|
11級
|
12級
|
13級
|
14級
| |
63
|
122
|
111
|
108
|
450
|
88
|
1,099
|
合 計
|
구분
|
구분
|
구 분
|
구 분 |
구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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