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樂, 狂...


1993년... 아니 1992년이던가? 아마도 학력고사를 마치고 서울에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친구인 K와 함께 제주도를 가보기로 했다. 내 돈으로 부산까지 가는 차비를 마련하고 K 돈으로 제주도를 가는 배삯을 마련해서 제주도를 구경하고 오기로 하였다. 고3 학력고사를 마치고 어느정도 남은 시간, 경상북도 영주의 산골짜기의 두 소년, 아니 이제는 젊은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전까지 영주를 떠나 혼자 여행해본 적이 있던가? 아니면 둘이 여행해본 적이 있던가? 말을 잘 듣던 나는 중고등학교때 친구집에서 자본 적도 없었다. K는 춘양이란 곳에서 나와 학교를 영주에서 다니면서 자취를 했었는데 딱 한번 K의 집에서 잔 적이 한번 있었고 그것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외박이었다.

그러니 영주를 친구와 둘이서 떠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가슴떨리고 기대에 부푼 일이겠는가마는... 우리의 기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영주에서 부산의 부전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할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당시의 무궁화 기차가 몇시간을 달렸는지도 모른 채 흥미진진하게 부산에 도착하였고, 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향하던 도중 버스와 택시가 가벼운 추돌사고를 일으켜 두 운전수가 싸우는데 마치 외국인듯 무슨 소리인지 못알아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다만 여객선 선착장 앞에서 K가 가방을 뒤지더니 울먹이며 통장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국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일단은 부산까지 왔으니 바다라도 구경하고 가자고 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간 곳은 해운대도 아니고 광안리도 아닌 태종대였다. 2학년 수학여행때 남해를 돌던 버스 안에서 바라보던 바다, 그리고 학력고사 발표 며칠 전 새벽에 눈보라를 뚫고 태백을 지나 동해안을 달리던 기차 안에서 본 바다 이외에, 내 스스로 바다를 찾아와 만난 것은 19살인지 20살이 처음인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결국 태종대에서 바다를 보고 올라왔다. 부산과의 첫 만남은 그리 흐지부지되었다.

두번째 만남은 작년이다. 전국산행일주를 하다가 프랑스와의 월드컵때문에 부산의 한 찜질방에 갔었고 거기서 밤을 새면서 축구를 보았다. 금정산을 다음날 가기로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갈 수 없었고 그냥 부산 하늘만 바라보다가 부산에서 통도사로 올라가야 했다. 그때는 왠지 부산이란 이름에도 장소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세번째 만남은 어제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엇그제 7시에 내려가 10시 40분에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도 불경기인듯 온천장 부근은 아주 한산했고... 그런 와중에 갑자기 가슴이 울컥해짐을 느꼈다. 왠지 모를 아련함과 기대감이 뭉글뭉글 피어오른 것이다. 그 느낌은 다음날 아침 모텔에서 나와 부산대학교로 가면서 더욱 느꼈다. 푸른 하늘과 그 아래 울긋불긋한 산들.... 뭐라고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 하루종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가슴 깊이 숨어있던 다짐 하나가 튀어나온다.

'부산을 여행하고 싶다!'

보통 내가 여행하고 싶은 곳은 사람이 없는 곳이거나 오지이거나 산이거나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바글바글하고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부산에 마음이 이렇게나 끌릴까... 바다를 끼고 커다란 도시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안에 높은 산을 껴안고 있는 이 곳이 왜그렇게 끌릴까....

하루 일정을 마치고 급하게 KTX를 타고 올라오느라 다른 구경은 하지 못했다. 하루종일 부산대학교 안에서만 있었기에 제대로 된 부산을 볼 수도 없었다. 그런만큼 KTX가 출발하면서 아쉬움만 점점 더 커져간다. 그리고 부산을 여행하고 싶다는 다짐은 이내 결심이 되어 온 몸으로 전율을 일으킨다.

조만간... 부산을 2박 3일로 제대로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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